콘텐츠목차

이호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69
한자 李鎬俊
영어음역 Yi Hojun
이칭/별칭 이호준(李鎬駿)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4년연표보기
몰년 1956년연표보기
본관 진성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이명은 이호준(李鎬駿)이다. 189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호준은 이 가운데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동봉, 이광호의 주도 하에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를 쓰러뜨린 것을 시작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해 나갔다.

오후 6시 무렵 이호준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호준은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