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265
한자 新竹里
영어공식명칭 Sinju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보령군 천북면 신죽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충청남도 보령군 천북면 신죽리에서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48㎢
가구수 159가구
인구[남/여] 270명[남 135명|여 135명]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법정리는 법률로 정하여진 리로서 지번의 기준이 되며, 법정리에는 인구와 생활권을 고려하여 1개 또는 여러 개의 행정리가 설치된다. 행정리는 20~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전통적인 촌락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리와 행정리로 구분되는 리는 우리나라에서 읍·면 지역의 하부 말단 단위로, 주로 농어촌 지역에 존재한다. 법정리로서 신죽리(新竹里)의 지리적 특성은 명칭 유래, 형성 및 변천, 자연환경, 현황 등의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신촌(新村)과 죽현(竹峴)의 이름을 따서 ‘신죽리(新竹里)’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홍주군(洪州郡)의 지역으로서 낙동(洛東)이라 하였는데, 1901년에 오천군(鰲川郡) 천북면(川北面)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천파동(川巴洞), 구봉동(九峯洞), 죽현리, 농현리(農峴里), 신촌과 웅천동(熊川洞), 언내동(堰內洞)의 각 일부와 결성군(結城郡) 가산면(加山面)의 죽현리(竹峴里), 농현리(農峴里), 염리(鹽里), 신리(新里), 마촌(馬村)을 병합하여 ‘신죽리’라 하여 보령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되어 보령시로 개편될 때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신죽리의 대부분 지역은 높이 100m 이하로서 중부와 남부는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북부, 서부 및 동부는 저평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남부에는 천수만 갯골이 있고, 남서부에는 갯벌이 발달되어 있으며, 남동부에는 습지가 부분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현황]

신죽리천북면의 동부의 끝 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홍성군 은하면 장척리에, 서쪽은 낙동리에, 남쪽은 천수만에, 그리고 북쪽은 신덕리에 각각 접하고 있다. 면적은 2022년 4월 기준으로 5.48㎢이다. 행정리는 신죽1~3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신죽1리에 신촌, 삼산 등이, 신죽2리에 마촌, 새터 등이, 그리고 신죽3리에 웅내, 죽현동, 농현동 등이 각각 있다[보령시행정지도 기준]. 가구와 인구의 분포를 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159가구에 총 270명으로 남자가 135명, 여자가 135명이다.

서해안고속국도가 신죽2리 일대를 남북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시도는 신죽2·3리 일대를 동서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중부와 남부의 구릉성 산지의 사면은 토지 이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북부, 서부 및 동부의 저평한 지형은 거의 논으로 개발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은하농장 등이 있다. 신죽2리에 편무성가옥(片戊成家屋)이 있는데, 편무성가옥은 1988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편무성가옥은 원래 17개 동이었는데, 현재는 안채로 쓰인 1개 동만 남아 있다. 안채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一’자 형으로 홑처마에 납도리집이다. 편무성은 강원도 영월군에서 고을 현감을 지내다가 신죽리에 정착할 때 편무성가옥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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