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46
한자 金時傑
이칭/별칭 사흥(士興),난곡(蘭谷),헌간(獻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3년연표보기 - 김시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84년 - 김시걸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88년 - 김시걸 검열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89년 - 김시걸 파직
활동 시기/일시 1694년 - 김시걸 지평(持平)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95년 - 김시걸 부사직(副司直)·수찬(修撰)·부교리(副校理)·헌납(獻納)·이조좌랑·교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96년 - 김시걸 이조정랑·사간·겸필선(兼弼善)·사복사정(司僕寺正)·겸보덕(兼輔德)·집의(執義)·응교(應敎)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99년 - 김시걸 전라도 관찰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01년 - 김시걸 대사간 임명
몰년 시기/일시 1701년연표보기 - 김시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87년 - 김시걸 헌간(獻簡) 시호 추증
부임|활동지 부임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
대표 관직 전라감사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문신.

[개설]

김시걸(金時傑)[1653~1701]은 조선 후기 문과에 급제한 이후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였고, 문집인 『난곡집(蘭谷集)』을 남겼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흥(士興), 호는 난곡(蘭谷)이다. 김광현(金光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김수인(金壽仁), 아버지는 김성우(金盛遇), 어머니는 남원 윤씨 목사 윤형성(尹衡聖)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시걸은 청음(清陰) 김상헌(金尚憲)[1570~1652]의 현손(玄孫)으로 1681년 진사가 되고 168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마방목(司馬榜目)』과 『문과방목(文科榜目)』에 모두 거주지를 충청남도 보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1688년 검열이 되었으나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가 1694년 갑술환국 후에 지평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이후 부사직·수찬·부교리·헌납·이조좌랑·교리·이조정랑·사간·겸필선·사복사정·겸보덕·집의·응교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1696년 전라도 암행어사가 되어 전라도 일대의 고을 수령의 정사(政事)를 평가하였고, 부수찬·부응교·부교리·사간·집의 등을 거쳐 1699년 승지에 이어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1701년 대사간을 지냈다.

훗날 고종(高宗)[재위: 1863~1907] 대의 영의정 심순택(沈舜澤)[1824~1906]은 김시걸의 시호를 요청하며 “윤기(倫紀)를 바로잡고 역적을 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며 국문하는 좌석에서 붓을 내던지고 전라감사(全羅 監司)를 지내면서 시를 지었으니, 김시걸의 나라를 따르는 충성심과 간사한 것을 배척하는 곧은 절개는 찬연히 빛나서 백대(百代)를 가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평가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시걸이 남긴 『난곡집』은 4권 4책으로 권1~3은 시 370수, 권4는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잡전(雜傳)」에 주인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살리기 위해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자결한 노복(奴僕) 정민에 대한 전기가 있다. 이 밖에도 「갑술사월문사낭청시소(甲戌四月問事郎廳時疏)」와 「옥당일기(玉堂日記)」는 갑술환국(甲戌換局)[1694년(숙종 20년) 서인들이 전개하던 폐비 민씨[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반대하던 남인이 화를 입어 권력에서 물러나고 서인이 집권한 사건]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887년 헌간(獻簡)의 시호가 내려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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