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16
한자 秋水鏡
이칭/별칭 청하(淸河),세심당(洗心堂),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30년연표보기 - 추수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추수경 명나라의 무강자사로 재임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추수경 총병아장(摠兵亞將)으로 조선에 들어옴.
활동 시기/일시 1593년 - 추수경 왜적 대파 및 평양성 탈환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추수경 남원 전투와 안덕원 전투에서 중상
몰년 시기/일시 1600년연표보기 - 추수경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04년 - 추수경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추서
추모 시기/일시 1866년 - 고종이 추수경의 영정 하사
묘소|단소 추수경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추동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 무강자사

[정의]

명나라의 무강자사로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참전 후 귀화하였으며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무신.

[개설]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명나라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1549~1598]을 따라 참전하여 곽산·평양성·한양·진주·동래성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주 군영에서 사망하였다. 추수경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하(淸河), 호는 세심당(洗心堂)이다. 추계 추씨(秋溪 秋氏)의 시조 추적(秋適)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찰사 추섭(秋燮), 할아버지는 병부상서 추서(秋墅), 아버지는 이부시랑 추천일(秋天日)이다.

[활동 사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명나라에 정곤수(鄭崑壽)[1538~1602]와 이덕형(李德馨)[1561~1613]을 사신으로 보내어 구원군(救援軍)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명나라 황제는 이여송을 제독으로 하는 5만 명의 구원군을 파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당시 추수경은 명나라의 무강자사(武康刺史)로 재임하고 있었다. 황제의 명을 받은 추수경은 총병아장(摠兵亞將)이 되어 장남인 추노(秋蘆)와 차남인 추적(秋荻)을 좌우익장(左右翼將)으로 삼아 무강의 병사 5천 명을 이끌고 동정군에 합세하여 12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들어왔다.

다음 해인 1593년 2월, 추수경은 곽산(郭山)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김응서(金應瑞) 장군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탈환하고 개성과 한양을 수복한 후 진주와 동래성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1597년 추수경은 남원 전투와 안덕원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고생하고 있었다. 그때 증원군으로 참전한 3남 추국(秋菊)과 4남 추지(秋芝) 그리고 5남 추난(秋蘭)이 진중(陣中)으로 들어와 다섯 아들과 상봉하였다.

추수경은 1600년 9월 9일 71세의 나이로 전주 군영에서 순국하였다. 사후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됨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삼았다. 추수경의 후손들이 보령 지역에 산재되어 살고 있다.

[묘소]

추수경의 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추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조(宣祖)[재위: 1567~1608]는 추수경이 사망한 뒤 완산부원군을 증직하였고, 1604년 다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추서하였다. 이후 1866년에 고종(高宗)[1863~1907]은 영정을 하사하였다. 충청남도 부여의 충현사(忠賢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두산백과 두피디아(https://www.doopedia.c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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