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03
한자 金明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 9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1월 20일연표보기 - 김명수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72년 1월 3일연표보기 - 김명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김명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 90 지도보기
묘소 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명수(金明秀)[1892~1972]는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 출신으로 만주 방면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김명수는 북로군정서와 연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김좌진(金佐鎭)[1889~1930]이 총사령관으로 있던 북로군정서는 충청남도 예산군에 거주하는 김영진(金瑛鎭)·조병채(趙炳彩) 등과 함께 국내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모색하였다. 이때 김명수는 조병희·이창호·노재철(盧載喆)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여 김좌진에게 보낼 것을 계획하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먼저 김명수는 김영진, 유기종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한 문서 작성을 기획하였고, 김영진의 지도에 따라 1921년 음력 3월 초 청라면 장산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임시정부군정서의 도장 및 재무서 도장 등을 조각하였다. 자금 모집에 관한 문서와 수통을 작성하여 인장을 찍은 후 작성된 문서를 최문기의 집에 보냈다. 또한 김명수는 김영진, 이완백과 함께 1921년 5월 2일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면 화산리 황오현(黃五顯) 집에 들어가 휴대한 권총으로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여 현금 860원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 후 김명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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