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24
한자 白萬己
이칭/별칭 白萬基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 8월 14일연표보기 - 백만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백만기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61년 3월 6일연표보기 - 백만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백만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지석홍 의병대

[정의]

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

[개설]

백만기(白萬己)[1883~1961]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08년 지석홍(池錫弘)이 이끄는 의병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을사늑약 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갔다. 또한 동시에 전국 도처에서 들고일어난 의병은 항일 투쟁의 선봉이 되었다.

1907년 7월에는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뒤 정미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한제국의 내정권을 마지막으로 장악하였다. 이어 8월에는 대한제국의 정규 군대를 강제로 해산함으로써 나라가 망할 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대의 저항을 미연에 차단하고자 하였다.

백만기는 1907년 7월 고종 강제 퇴위와 8월 군대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항일의병전쟁이 격화·고조되자 의병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일련의 침략 정책에 반대하면서 백만기도 의병 대열에 동참하여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1908년 3월에는 지석홍 의병대에 가담하여 활약하던 중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풍년동에서 체포되어 태형(笞刑)을 받았다. 또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1908년 음력 7월에는 동지 이종갑(李鍾甲)[1874~1932]·윤창영(尹昌榮)[1889~1988] 등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보령시 불은면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을 거두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남포 헌병분견소에 체포되었다.

1909년 4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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