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최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92
한자 江陵 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강릉 최씨 입향
입향지 강릉 최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도보기
성씨 시조 최필달(崔必達)
입향 시조 최광필(崔光弼)

[정의]

최필달을 시조로 하고 최광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이거 성씨.

[개설]

강릉 최씨는 조선 시대에 성리학뿐만 아니라 시문·시화·음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가문이다.

[연원]

강릉 최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 건국에 기여한 공으로 918년(태조 1)에 삼중대광삼한벽상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贊化功臣)에 책록된 뒤 영첨의좌정승(領僉議左政丞)을 지낸 후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진 최필달을 시조로 한다. 최광필(崔光弼)[1553~1608]부터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을 피하여 한양에서 충청도 보령 지역의 남포현으로 이동하면서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최광필은 1588년(선조 21)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바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마방목(司馬榜目)』을 살펴보면 과거 급제한 당시에 최광필이 한양에 거주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에 급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아버지 최영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을 하다가 충청도 보령 지역의 남포현으로 입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내인 무송(茂松) 윤씨(尹氏) 가문도 함께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 이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남포현의 안씨, 황씨, 윤씨, 최씨로 불리는 유력한 성씨가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290명으로 파악된다.

[관련 유적]

최광필 묘소는 원래 경기도 장단[현재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일대]에 묘역이 있었지만, 이후 보령 지역 후손에 의해서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통달산 자락으로 옮겼다. 최광필은 효행이 높기로 유명한데, 선조가 사망하자 부모상의 예처럼 하면서 외부 침상에서 거처하며 소식(素食)을 하면서 이웃과의 모임에 일절 나가지 않았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 병으로 사망하였다. 나라에서는 1608년(선조 41) 최광필을 통정대부(通政大夫) 도승지(都承旨)에 추증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에는 최광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서 정문(旌門)을 내렸다. 이후 묘소와 마찬가지로 정문도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로 이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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