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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97
한자 全州崔氏百源樓
이칭/별칭 백원루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석동길 68-9[연곡리 460]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경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60년연표보기 - 전주 최씨 백원루 건립
현 소재지 전주 최씨 백원루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석동길 68-9[연곡리 460]지도보기
성격 정려문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2층 누각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전주최씨 송애공파
관리자 전주최씨 송애공파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려문.

[개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 사상과 정절을 으뜸으로 삼았다. 조정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여, 충효열(忠孝烈)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정려(旌閭)를 내려 백성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정려의 종류에는 정려비와 정려문, 정려각 등이 있다. 전주 최씨 백원루(全州崔氏百源樓)는 조선 시대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필성(崔弼成)과 최계성(崔繼成)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최필성과 최계성의 본관은 전주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최광지(崔匡之), 할아버지는 최생명(崔生明), 아버지는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이다. 현재의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최수손의 아들 5형제는 모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에게 배워서 모두 중종조에 사마시(司馬試)에 올랐으며, 그중에서도 제일 맏이인 최순성(崔順成)과 셋째인 최극성(崔克成)은 문과에 올라 최순성은 성균관 대사성을, 최극성은 예문관 한림을 지냈다. 이들 5형제는 부모를 섬길 적에 모두 한방에 기거하며 한 이불을 덮고 항상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최필성의 자는 우경(虞卿), 호는 처헌처사(處軒處士)이다. 최수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재주가 뛰어났고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학문이 날로 진보하여 모든 사람이 최필성에게 크게 기대를 걸었으나, 내종(內從)인 청호(晴湖) 성중엄(成重淹)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크게 화를 입자 어지러운 세상에 나갈 뜻을 접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507년(중종 2)에 실시된 정묘 증광시(增廣試)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정암 조광조는 최필성을 현량과(賢良科)에 천거하기를 “최필성은 어버이를 모심에는 정성을 다하였고 재주는 문무를 겸하였다. 특히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등의 제현과 동렬이다”라고 칭찬하였다. 최계성의 자는 소선(紹先), 호는 처암(處菴)이다. 최수손의 넷째 아들로, 형 최필성과 함께 정암 문하에 들어가 배웠다. 1507년에 실시된 정묘 증광시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이후 오직 성리학에만 전념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이들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종기가 나서 앓게 되자 입으로 그 종기를 빨아서 병을 낫게 하였으며, 또한 아버지의 분을 맛보고서 병세를 알아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별세하니 예(禮)에 따라 집상(執喪)을 하였고, 장례를 치를 때에는 손수 흙을 날라 봉분을 만들고 움막을 쳐서 3년 동안 시묘(侍墓)를 하였다고 한다. 1526년(중종 21) 전라도 관찰사 유관(柳灌)이 최필성의 효행에 대해 “부안현(扶安縣) 진사(進士) 최필성은 어미가 유종(乳腫)을 앓아 심한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 치유시켰습니다. 아비인 진사 최수손이 악질(惡疾)에 걸려 백약이 무효인 채 달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의원이 ‘박쥐를 잡아야 치유시킬 수 있다’ 했으나 겨울이라서 아무리 잡으려 찾아보아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부르며 통곡하자 박쥐가 절로 날아왔으므로 이것으로 약을 만들어 먹이니, 그 병이 치유되었습니다”라는 장계(狀啓)를 올렸다. 이에 조정에서는 아우 처암 최계성과 함께 효행을 치하하고 1560년(명종 15)에 정려를 내렸다. 현재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 유절암(留節菴)에 있는 백원루(百源樓)가 이들 형제의 정려이다. 최필성은 도동서원(道東書院)에, 최계성은 옹정서원(甕井書院)에 배향하였다. 이들 형제의 묘는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에 있다.

[위치]

전주 최씨 백원루는 부안군 부안읍 석동길 68-9[연곡리 460번지 석동마을]에 있다. 부안군 부안읍에서 지방도 제707호선을 따라 주산면 소재지로 가다가 부안고등학교를 지나면 좌측에 가가중기공업사가 나온다. 가가중기공업사를 막 지나면 좌측에 골프 연습장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길로 들어가 골프장 앞에서 우측으로 가다가 좌회전하여 직진하면 전주 최씨 재실인 유절암이 나온다. 유절암 입구에 있는 2층 누각이 백원루이다.

[변천]

1560년에 정려를 받았다.

[형태]

효자 정려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2층 누각이다. 길이는 정면이 각 220㎝, 240㎝, 220㎝이고, 측면은 각 230㎝이다.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자연석을 기초석으로 하여 원형의 나무 기둥을 얹었다. 활주는 자연석으로 된 기초 위에 화강암의 돌기둥을 세우고, 돌기둥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출입문이 가운데 1개로 되어 있으며,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 처마 밑에 ‘효자성균생원최계성지려(孝子成均生員崔繼成之閭)’와 ‘효자성균진사최필성지려(孝子成均進士崔弼成之閭)’ 정려가 걸려 있다. 누각 뒷면에는 ‘백원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1941년에 11세손 최광환(崔光煥)과 1947년에 11세손 최재영(崔再榮)이 쓴 ‘경차(敬次)’ 현판과, 1975년에 전주 최씨 문중 도유사(都有司) 최익환(崔翼煥)이 근기(謹記)한 ‘표창문(表彰文)’이 걸려 있다.

[현황]

전주 최씨 백원루전주최씨 송애공파가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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