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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호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90
한자 保安扈氏
영어공식명칭 Boan Hossi|Boan H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부안[보안] - 전라북도 부안군
입향지 보안 호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성씨 시조 호의(扈義)

[정의]

호의를 시조로 하고, 전라북도 부안을 관향으로 하는 세거 성씨.

[연원]

우리나라 호씨(扈氏)의 관향은 20여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주 호씨(全州扈氏)를 제외하고 보안 호씨(保安扈氏)를 비롯하여 모두가 고려 개국공신 호의(扈義)를 시조로 한다. 부안 호씨(扶安扈氏)는 원래 보안 호씨였다. 조선 전기 보안현(保安縣)부령현(扶寧縣)부안현(扶安縣)으로 통합되어 관향을 부안으로 쓰는 것이다.

927년(태조 10) 왕건(王建)이 공산성에서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호의가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배현경(裵玄慶), 홍유(洪儒), 유금필(庾黔弼) 등과 함께 왕건을 구해 6태사(六太師)에 봉하여졌다. 호의의 아들 호은열(扈殷悅)은 광익효절정난안사공신(匡翼孝節定難安社功臣) 보안군(保安君)에 봉하여지고, 그 아우 호흥인(扈興仁)은 나주군(羅州君)에 봉하여져 각각 보안과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에서는 부안 호씨 호예(扈銳)-호석(扈碩)-호중덕(扈重德) 3대가 ‘보안군’으로 봉군되는 등 명문가를 이루었으나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크게 현달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입향 경위]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부안 성씨 조에 부안 호씨가 고촌(鼓村)의 망성(亡姓)으로 수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고촌(鼓村) 호(扈)’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부안 호씨는 고려가 세워지기 전에 이미 부안에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호남읍지(湖南邑誌)』[1790년대]와 1887년(고종 24) 편찬된 『부안지(扶安誌)』「부안현(扶安縣)」에는 여전히 보안의 성씨로 실려 있으나 조선으로 들어와 번성하지 못하고 주산면 동정리, 동진면 등에 몇몇 가호가 살았던 것으로 전한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호씨가 살고 있지 않다. 1991년 발간된 『부안군지』 성관별 분포 현황에도 호씨는 나오지 않는다. 2000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부안[보안] 호씨가 전국에 71가구, 226명이 살고 있으며, 전라북도에는 14가구, 35명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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