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05
한자 趙玉昆
영어공식명칭 Jo Okgon
이칭/별칭 대가(待價)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83년 - 조옥곤 생원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494년 - 조옥곤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02년 - 조옥곤 사간원 정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26년 - 조옥곤 한성부 우윤 제수
출생지 조옥곤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지도보기
묘소|단소 조옥곤 묘소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함열(咸悅)
대표 관직 호조 참판|한성부 우윤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가계]

조옥곤(趙玉昆)[?~?]의 본관은 함열(咸悅)이며, 자는 대가(待價)이다. 아버지는 조지(趙智)이다.

[활동 사항]

조옥곤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에서 태어났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4년(성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2년(연산군 8)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으며 중종 대에는 우부승지(右副承旨),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중추부동지사라고도 함], 공조 참판(工曹參判),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거치고 1526년(중종 21)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하였다. 중종조의 권신 남곤(南袞)과 인척지간이었으므로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 조옥곤이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 우의정이었던 남곤이 한 수령의 근무 성적을 상등으로 매겨줄 것을 청탁하고 지방의 특산물을 바칠 것을 명한 일이 있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당시 조옥곤은 남곤의 청탁을 물리치며 청탁한 수령에 대하여 가차 없이 하등을 매겼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조옥곤을 대단한 청리(淸吏)로 여겼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 쟁갈마을 앞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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