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관대식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81
한자 佐官貸食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용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8년 10월연표보기 - 「좌관대식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저습지에서 발견
발견|발굴처 쌍북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280-5 지도보기
성격 목간
용도 환곡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저습지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백제 목간.

[개설]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는 2008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저습지에서 출토된 목간에 기록된 행정 문서이다. 7세기 백제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서 제작된 「좌관대식기」에는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곡물과 식량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환곡 문서의 성격을 가진다.

[형태]

「좌관대식기」는 길이 81㎝, 너비 2.3㎝, 두께 0.6㎝의 목간에 기록되어 있다. 앞뒤 양면에 글자가 있는데, 앞면에 61자, 뒷면에 58자, 도합 119자가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좌관대식기」에는 ‘佐官貸食記(좌관대식기)’라는 제목이 적혀 있으며, 대식(貸食)한 기록, 즉 실제 곡식을 출납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곡식을 출납한 내용에 대하여서는 곡식을 빌려준 양, 반납한 양, 미납한 양 등이 기록되었는데, 대여한 양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지만, 반납한 양이나 미납한 양이 없을 경우 생략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무인년(戊寅年), 즉 558년(위덕왕 5) 혹은 618년(무왕 19) 6월에 좌관(佐官)이라는 정부 관직에 있는 사람이 각종 곡물을 대여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때 ‘좌관’은 중국 왕조의 용례를 참고하여 ‘왕이 직접 임명하여 각 관사의 장관을 보좌하는 중간층의 관리’로 보는 견해가 있다. 「좌관대식기」의 ‘좌관’을 ‘관리를 돕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때, 목간의 내용은 관리의 생계를 돕기 위하여 곡물을 빌려준 것에 대한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좌관대식기」에 기록된 ‘6월’은 곡물 환수 시점으로 볼 수 있으며, 빌려준 곡식에 대하여는 5할의 높은 이자를 징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좌관대식기」에는 백제의 환곡 제도 운영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 환곡 제도의 원류로 간주할 수 있는 자료이며, 194년(고국천왕 16)에 “매년 3월부터 7월까지 관곡(官穀)을 내서 백성의 호구(戶口)에 따라 빌려주되 차등을 매겼다가 10월이 되면 관아에 반납하도록 하였다”라는 진대법(賑貸法)과도 상통한다는 점에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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