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정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34
한자 河東 鄭氏
영어공식명칭 Hadong J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363년 - 정흥인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36년 - 정흥인 사망
본관 하동 - 경상남도 하동군
입향지 능산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정도정(鄭道正)
입향 시조 정흥인(鄭興仁)

[정의]

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흥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연원]

현존하는 하동 정씨(河東 鄭氏)는 세 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첫째는 통일 신라 말 하동으로 이거하여 고려 초에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고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이다. 둘째는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도첨의좌정승과 검교태자첨사 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셋째는 고려 숙종 이후 지예부사와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후 하동백(河東伯)에 책봉된 정손위(鄭遜位)를 시조로 하여 세계가 계승되는 계통이다. 부여 지역에 정착한 하동 정씨는 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석숭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이다.

정도정을 시조로 하는 하동 정씨는 계보가 실전되었다가 이후 후손인 정석숭을 1세조로 세계를 이어 오고 있으며, 산원공파(散員公派)·흥의공파(興義公派)·문성공파(文成公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부여에 정착한 하동 정씨는 문성공파의 후손들이다.

[입향 경위]

부여의 하동 정씨는 9세 정흥인(鄭興仁)[1363~1436]이 석성현감으로 재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입향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흥인이 부여에서 노년을 보내자 세종은 정흥인의 아들 정인지(鄭麟趾)[1396~1478]를 특별히 충청도관찰사로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후 정인지는 세조의 노여움을 사서 부여에 부처(付處)되기도 하였고, 정인지의 6세손인 정택뢰(鄭澤雷)[1585~1619]는 부여의 의열사(義烈祠)에 위패가 모셔지기도 하였다. 숙종 대에 정득열(鄭得說)정택뢰의 충효 정려가 세워지고 이어서 정택뢰 처 동래 정씨, 정천세(鄭千世)의 정려가 부여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하동 정씨가 부여에 계속 세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황]

1987년에 발간된 『부여군지』에 따르면 부여군의 하동 정씨는 총 238호이며, 거주지로는 부여읍 124호, 규암면 41호, 은산면 16호, 양화면 10호 등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하동 정씨 부여 관련 유적으로는 부여읍 능산리정흥인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부여 정흥인의 묘]와 정득열의 묘소와 묘갈[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8호 부여 정득열 묘 및 비]이 있다. 부여읍 관북리에는 정득열정택뢰, 정택뢰 처 동래 정씨, 정천세의 명정이 봉안된 정려각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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