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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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大河 |
이칭/별칭 | 수오(受吾),이소당(履素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창열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개설]
노대하(盧大河)[1546~1610]는 임진왜란 때 김응남(金應南) 휘하의 종사(從事)로 있으면서 식량 수송에 공을 세웠다. 천안 군수로 있을 때 처음으로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였으며, 왕실의 행재(幸宰)로 쓰이던 화축관과 객사를 건립하였다. 천안 군수 임기를 마치고 이천 부사로 승진하였다.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오(受吾), 호는 이소당(履素堂)이다. 할아버지는 활인서 별제를 지낸 노홍(盧鴻), 아버지는 돈녕부 첨정을 지낸 노극신(盧克愼)이며, 어머니는 청주 목사를 지낸 이증영(李曾榮)의 딸 덕산 이씨(德山李氏)이다. 큰아버지는 노수신(盧守愼)이다.
[활동 사항]
1574년(선조 7) 처음 벼슬길에 올라 은진 현감을 거쳐 의성 현령이 되었고, 1584년에 교하 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중에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을 이천에 배종하여 첨정(僉正)이 되었고, 김응남(金應南)과 함께 군량 운반에 공을 세웠다.
1597년에 청풍 군수와 단양 군수를 거쳐 1602년 천안 군수가 되었고, 대동법을 처음으로 시행하였다고 한다. 1610년 고부 군수로 재직하다가 관아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