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E02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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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하 |
농한기가 되면 삼삼오오 마을회관에 모여 고스톱을 치는 게 낙이라는 각산1리 할머니들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회관에는 여자들이 올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깥출입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지금 여자들은 시대를 참 잘 타고났다.”며 부러움 반, 놀림 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요즘 세대에서는 자유롭게 드나드는 친정집이 할머니들에게는 참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고 한다. 시집을 온 뒤로는 친정 한 번 자유롭게 가 보질 못했다는 할머니들은, “시집을 온 뒤에는 소박을 당하지 않고서는 친정집에 갈 수 없었다.”며, 심지어는 명절뿐만이 아니라 부모님 기일에도 친정에 갈 수 없었다고 했다.
각산1리에 사는 장세완 씨가 어머니께서 겪으신 일을 들려주었다. “친정 모친(장세완 씨의 외할머니)이 돌아가셨어요. 삼종 증조부(장세완의 부친)가, 집안에 어른들이 집에 어른을 불러놓고 ‘야야 안으로(부인에게) (말)하지 말고 니(아버지) 혼차(자)만 갔다 오너라. 집에 일이 있는데.’ ‘예’ 그래 (장세완의) 아버지만 그래가 가서 상례에 가서 어매(어머니)는 참 친정 모친이 돌아가신 사실조차도 몰랐던 거야. 그래 집안에 행사(제사)가 끝나고 그 달이 넘어서 집에 어른(할아버지)이 불러서 ‘이리 오너라. 친정 모친이 돌아가셨다. 부고를 받았다. 니한테는 집안에 제사가 걸려서 이야기를 못했다.’ 그래도 우리 어매(머니)가 ‘아이고, 예 그랬습니까’ 이러카고 나왔어요. 요즘 같으면 이혼감입니다.”
그러니까 장세완 씨의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지만, 며느리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집안의 제사를 준비해야 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장 이혼 사유가 됐을 것이다. 아니,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근현대를 살아온 장세완 씨의 어머니가 실제 겪었던 이야기이다.
이러한 각산마을에서 부녀자들의 웃음소리가 담장 밖으로 새어나갔을 리 만무하다. 심하게 얘기하면 불빛조차 새어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각산마을에서 2009년 현재 70대 이상이 되신 할머니들이 고스톱이란 것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 1960년대라고 한다. 고스톱을 처음 접한 할머니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호롱불을 켜 놓고 고스톱을 쳤는데, 잠을 자야 할 시간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집안 어른이 “뭐하노?”라고 인기척을 내자, 얼마나 놀랐는지 정신없이 다락방에 숨다가 다리를 접지른 할머니도 있었다고.
당시 ‘놀이’라는 것에 관대하지 못했던 선비마을에서 고스톱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몇십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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