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18
한자 具褘 追慕碑
이칭/별칭 고려 보국숭록대부 면성부원군 시문정 구공추모비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남로 203-36[서변동 1271]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4년연표보기 - 구위 추모비 건립
현 소재지 모선당 앞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남로 203-36[서변동 1271]지도보기
성격 추모비
양식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螭首)
관련 인물 구위(具褘)|이무(李茂)|차종로(車宗老)|구홍(具鴻)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184㎝|62㎝|32㎝
소유자 능성구씨 좌정승공파
관리자 능성구씨 좌정승공파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건립된 고려 후기 문신 구위의 추모비.

[개설]

구위 추모비(具褘追慕碑)[고려 보국숭록대부 면성부원군 시문정 구공추모비(高麗輔國崇祿大夫沔城府院君諡文貞具公追慕碑)]는 고려 후기 공민왕(恭愍王)[재위 1351~1374] 때 문신인 구위(具褘)을 기리고자, 대구광역시 지역에 모여 사는 후손들이 1984년에 세운 추모비이다. 구위는 본관이 능성(綾城)으로, 능성구씨 6세(世)이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등을 역임하였으며, 나중에 문정공(文貞公),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하여졌고 문하정승(門下政丞)에 추증되었다.

[건립 경위]

현재 구위의 묘소는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성에 있어서 남한에 사는 후손들은 성묘와 제향을 드릴 수 없다. 특히 자손들이 많이 사는 대구 지역의 능성구씨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추모하고자 1984년 구위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구위 추모비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1271에 있는 모선당(慕先堂) 앞에 세워져 있다

[형태]

구위 추모비는 높이 184㎝, 너비 62㎝, 두께 32㎝의 크기이며 재질은 오석이다.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갖춘 전형적인 비석 형태이다.

[금석문]

구위 추모비에는 ‘추모비고려 보국숭록대부 면성부원군 시문정 구공추모비(追慕碑高麗輔國崇祿大夫沔城府院君諡文貞具公追慕碑)’라는 비제가 적혀 있고, 구위에 대한 소개와 추모의 뜻 등을 한자로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손히 생각건대 우리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는 휘(諱) 존유(存裕)이니 고려조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벽상삼한(壁上三韓) 삼중대광 검교상장군(三重大匡檢校上將軍)에 오르니, 부군의 5대조이다. 평장사(平章事) 휘 민첨(民瞻)과 안동면 도감판관(安東面都監判官)으로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에 추증되신 휘 연(珚), 문과에 장원하여 판전의시사(判典儀事)로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군(封君)된 휘 예(藝)는 부군의 고조 증조 조부이다. 아버지 휘 영검(榮儉)은 선충익찬공신(宣忠翊贊功臣)이요 중대광 전리판서(重大匡典理判書)로 면성군(沔城君)에 봉군되었다.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니 정당문학(政堂文學) 규(珪)의 딸이요, 또 어머니 경주김씨(慶州金氏)는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자장(子章)의 딸이다.

부군의 휘는 위(褘)니 안씨의 소생으로 재능과 지략이 뛰어나고 기상은 높았다. 성장함에 마음을 다하여 전적(典籍)을 공부하고 곁으로 정문(程文)을 익혀 큰 뜻을 품고 임금의 교화를 도왔다. 벼슬은 중현대부 소부윤(中顯大夫少府尹)으로 삼중대광문하좌정승 특진보국숭록대부 보문각대제학 겸 판의금부사 지이조사(三重大匡門下左政丞特進輔國崇祿大夫寶文閣大提學兼判義禁府事知吏曹事)에 추증되었고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묘소는 개풍군(開豊郡) 남면(南面) 의암리(義菴里) 인좌(寅坐)에 있다. 묘표(墓表)는 15세손 윤명(允明)이 지었다. 배위(配位) 경주김씨(慶州金氏)는 보문각대제학 문하시중(寶文閣大提學門下侍中) 문정공(文貞公) 세태(世泰)의 딸이다. 묘소는 상하봉인데 부군의 뒤에 있다.

5남 9녀를 두니 장남 홍(鴻)은 좌정승(左政丞)이요 성량(成亮)은 판안동대도호부사(判安東大都護府事)요 성로(成老)는 도원수(都元師)요 성우(成祐)는 형조판서(刑曹判書)요 성덕(成德)은 제신(宰臣)이다. 여서(女婿) 이무(李茂)는 좌정승(左政丞)이요 이빈(李彬)은 동지밀직(同知密直)이요 나언신(羅彦信)은 제신(宰臣)이요 이순(李淳)은 감사(監司)요 임산보(任山寶)는 한성부윤(漢城府尹)이요 최원우(崔允祐)는 제신(宰臣)이요 박영균(朴永均)은 판서(判書)요 최안보(崔安俌)는 종부부령(宗簿副令)이요 차종로(車宗老)는 방어(防禦)이다. ……

아! 부군의 큰 공과 높은 덕은 마땅히 후세에 전할 만한 것이거늘 세대가 이미 오래되고 병화(兵火)를 여러 번 겪은 탓으로 문헌으로 고증할 수 없고 행적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묘소가 이북에 있어 성묘(省墓)의 정성을 펼 수가 없어 후손의 아픔이 더욱 더 간절하였다. 지난번 여러 종인들이 의논하고 힘을 모아 창포산(菖蒲山)에 모선당(慕先堂)을 건립하고 존령(尊靈)이 오르고 내리실 수 있는 장소로 삼아 1년에 한 번 제사를 올리니 혹 보본(報本)의 정성에 합하지 않겠는가! 황송하여 두려움을 둘 곳이 없다. 명(銘)을 하노라.

믿음직한 부군께서는 하늘이 산악(山嶽)을 내신 것과 같도다. 깨끗한 마음은 얼음같이 맑으시고 온유한 모습은 옥과 같도다. 임금을 보필할 수 있는 재목으로 학문을 구비하셨도다. 세상이 상전벽해(桑田碧海)하여 아름다운 자취가 민몰(泯沒)되었네. 추모의 정을 이길 수 없어 이에 감히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고 덕을 나타내니 천억 년 밝게 보이소서.

단기 4317년 갑자년(1984) 중추절 후손 본흥(本興) 삼가 짓다.

[恭惟我綾城具之上祖, 諱存裕, 始顯于麗中. 文魁 璧上三韓 三重大匡 檢校上將軍, 卽府君之五代祖也. 平章事, 諱民瞻, 安東面 都監判官 贈門下左政丞, 諱珚, 文魁 判典儀事, 沔城府院君, 諱 藝, 高曾及祖也. 考, 諱 榮儉, 宣忠翊贊功臣, 重大匡 典理判書, 沔城君. 妣, 貞夫人 竹山安氏, 政堂文學珪女. 妣, 貞夫人 慶州金氏, 興寧府院君, 子章女. 府君, 諱 褘, 安氏出, 才智過人, 志氣英邁. 及長, 潛心典籍, 傍治程文, 抱經綸大志, 贊襄弘化. 官中顯大夫 少府尹, 贈三重大匡 門下左政丞 特進輔國崇祿大夫 寶文閣大提學 兼 判義禁府事 知吏曹事, 沔城府院君, 諡文貞. 墓開豊郡 南面 義菴洞 寅坐原. 墓表十五世孫, 允明撰. 配, 貞敬夫人 慶州朴氏, 寶文閣大提學 門下侍中, 文貞公, 世泰女. 墓上下封, 在后. 有五男九女, 男 鴻, 左政丞, 成亮, 判安東, 成老, 都元師, 成祐, 刑曹判書, 成德, 宰臣. 女 李茂, 左政丞. 李彬, 同知密直. 羅彦信, 宰臣. 李淳, 監司. 任山寶, 漢城府尹. 崔允祐, 宰臣. 朴永均, 判書. 崔安俌, 宗簿副令. 車宗老, 防禦. …… 鳴呼! 府君之豊功偉德, 宜其有可傳於後世, 而世代已遠, 兵火累荐, 文獻無徵, 難得而尋逐影響. 且墓所在北, 未伸瞻掃之誠, 後孫紆欝之痛, 去益彌切. 議諸宗合衆力, 建慕先堂于菖蒲山, 爲尊靈陟降之所, 歲薦一祭, 或可合於報本之誠耶, 惶恐無地. 銘曰允矣府君, 自天降嶽. 灑落如氷, 溫潤如玉. 輔弼之材, 紹述之學. 桑海累變, 泯沒懿蹟. 不勝追慕, 玆敢豎石. 紀事表德, 昭示千億.

檀紀 四千三百十七年 甲子 仲秋節, 後孫本興謹撰. 後孫玹謹書.]”

[현황]

구위 추모비는 관리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구위 추모비는 선조를 기리며 추모하는 숭조(崇祖) 정신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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