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29
한자 金文起 泰忠閣
영어공식명칭 Kimmungi Taechunggak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4길 31-5[노곡동 204]
시대 조선/조선 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김문기 태충각 건립
현 소재지 태충각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4길 31-5[노곡동 204]지도보기
성격 비각
양식 홑처마|맞배지붕|기와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김녕김씨 노곡문중
관리자 김녕김씨 노곡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문기를 기리는 비각.

[개설]

김문기 태충각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기리고자 김노연(金路淵)과 김서연(金書淵)이 1900년에 건립한 비각이다. 김문기는 1439년(세종 21) 경상도아사(慶尙道亞使)로 대구에 부임하면서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재임 중에는 금호강 변인 노곡동의 산수를 사랑하여 공무가 없는 날에 자주 찾아 노닐었다고 한다. 김문기가 앉았던 바위를 ‘아사암(亞使巖)’이라고 하였는데, 김문기의 벼슬에서 딴 이름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땅속에 묻혔다고 한다.

김문기는 1399년 충청도 옥천군 사단동(社壇洞)에서 출생하였다. 142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430년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비롯하여 사간원좌헌납(司諫院左獻納), 경상도아사, 겸지형조사(兼知刑曹事), 병조참의, 함길도관찰사, 공조판서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456년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일으킨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유고를 엮은 6권 3책의 『백촌선생실기(白村先生實記)』가 전한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의 사육신역사공원에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김문기의 영정을 봉안한 금회영각(琴回影閣)이 있는데, 이는 1900년 김문기의 후손과 달성군 일대에 세거하고 있는 김녕김씨 일족이 의논하여 김문기가 거닐던 금호강 인근에 건립한 것이다.

[위치]

김문기 태충각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204에 있다. 금호강 변인 북구 노곡동 마을 입구에서 골목길을 따라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오른편 언덕에 있다.

[형태]

입구에는 김문기 태충각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있고, 재실 대문인 유의문(由義門)을 들어서면 건축물 중간에 태충각이 있다. 비각의 좌측에 경의재(景毅齋)가 있고, 우측에 사성재(思誠齋)가 있다. 경의재김문기의 재실이고, 사성재김녕김씨 노곡 입향조 김귀송(金貴松)의 재실이다. 그 뒤로는 김문기의 사당인 성인사(成仁祠)와 김귀송의 사당 숭효사(崇孝祠)가 있다.

김문기 태충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기와집이며, 지붕의 양측에는 비바람을 막는 널빤지인 풍판(風板)을 달았다. 내부에는 비석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높이 135㎝, 폭 58㎝, 두께 33㎝ 크기이다.

[현황]

김문기 태충각김녕김씨 노곡문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어 건축물은 매우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김문기 태충각김녕김씨 노곡문중에서 선조인 김문기를 기리고자 세운 상징적인 비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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