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675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선사/청동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병섭

[정의]

대구광역시 각지에서 확인된 여러 형태의 가마터.

[개설]

가마란 각종 토기, 도기, 자기, 옹기, 기와, 벽돌 등을 고온에서 구워 내었던 구조물이며, 숯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도 숯가마[炭窯]라 하여 가마 범주에 포함시킨다. 가마터는 이러한 시설물이 폐기되고 남은 흔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마를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構造窯, 室窯]로 나누고 있다. 굴가마는 소성실 바닥의 경사가 거의 없는 편평한 평요(平窯), 소성실 바닥이 경사지가 길쭉한 형태의 등요(登窯)로 구분된다.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토기를 구웠던 가마는 한데가마이며, 초기국가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지하식과 반지하식의 타원형 굴가마가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래 굴가마는 주로 나지막한 구릉의 사면에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축조된다. 굴가마의 구조는 사면 아래쪽에서부터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 연도가 일직선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성실의 구축 위치에 따라 지하식, 반지하식, 지상식으로 구분된다.

[내용]

대구 지역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적에서 가마터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토기 가마와 기왓가마이며, 숯가마도 확인되었다. 선사시대 한데가마는 달성 성하리 유적에서 청동기시대 토기 가마가 2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토기 가마는 원형이나 타원형을 띠는 것이 보통인데, 성하리 유적에서는 장방형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삼국시대 가마터는 신당동 유적에서 토기 가마 5기, 도원동 유적에서 토기 가마 6기, 욱수동·옥산동 유적에서 토기 가마 41기, 사수동 유적에서 토기 가마 1기, 창리 유적에서 토기 가마 2기, 성하리 유적에서 토기 가마 2기, 쌍계리 유적에서 토기 가마 1기가 확인되었다. 남북국시대 가마터는 서재리 유적에서 토기 가마 2기, 괴전동 유적에서 토기 가마 2기, 명곡리 유적에서 기왓가마 1기가 확인되었다. 토기, 도자기, 기와를 만들고 굽는 시설 모두를 묶어 요장(窯場)이라고 하는데, 토기 가마의 수에 따라 소규모[1~2기], 중규모[3~5기], 중·대규모[6~10기], 대규모[20기 내외] 요장으로 세분된다. 토기 가마 41기가 확인된 욱수동·옥산동 유적은 신라권역의 대규모 요장으로 대구와 경산 지역 최고 수장층 고분군과 취락이 있는 임당 지구를 비롯하여 시지 지구, 가천 지구 등의 고분군과 취락에 주로 공급하던 최대 규모의 토기 생산 유적이며, 우리나라 삼국시대 대표적인 토기 생산 유적이다.

고려~조선시대의 가마는 대부분 기왓가마이며, 청자나 백자 가마터는 대구 지역에서 조사된 예가 드물다. 성하리 유적에서 기왓가마 1기, 대곡동 유적에서 기왓가마 1기, 범어동 유적에서 기왓가마 2기, 신매동 유적에서 기왓가마 3기, 대봉동 유적에서 기왓가마 1기, 명곡리 유적에서 기왓가마 1기, 응암리 유적에서 기왓가마 1기가 확인되었다. 대구 지역에서 확인된 고려·조선시대 기왓가마는 대부분 1~2기 정도의 소규모 요장으로 운영되었으며, 인근에 단기간에 기와를 공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하빈리 유적에서 초기국가시대의 숯가마 4기, 창리 유적삼덕동 유적에서 삼국시대 숯가마 1기, 부인사에서 조선시대 숯가마 1기가 확인되었다. 숯가마는 측구식탄요(側口式炭窯), 무측구식탄요(無側口式炭窯)로 구분되며, 측구식탄요의 경우 다른 가마와는 달리 가마의 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며, 측면 작업장에서 볼 때, 좌측에 연소부, 우측에 연도부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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