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32
한자 - 由來碑
영어공식명칭 Baesilmaeul Yuraeb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1186-1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99년 9월연표보기 - 배실마을 유래비 건립
원소재지 배실마을 유래비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1186-15 지도보기
성격 마을 유래비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91㎝[너비]|57㎝[높이]|21㎝[두께]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개설]

배실마을 유래비는 1999년 9월에 세워진 유래비이다. 유래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배실마을의 ‘배실’은 우리말로 ‘배나무골’이라는 뜻이며, 마을에 배나무가 많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배나무골’을 다시 한자로 옮기면 ‘이곡(梨谷)’이 되니,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해당한다. 배실마을은 약 480년 전인 1540년대 무렵에 벽진이씨(碧珍李氏)가 처음 터를 잡았으나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230년 뒤인 1770년대 무렵에 김해허씨(金海許氏)가 다시 터를 잡았고, 이후 의성김씨(義城金氏)·수성나씨(壽城羅氏)·경주이씨(慶州李氏)·창원황씨(昌原黃氏) 등이 함께 살았다. 1988년 대구직할시 달서구가 신설되면서 서구 관할구역에 있던 이곡동이 달서구에 편입되었다. 1995년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이곡동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편입되었다.

[건립 경위]

1984년에서 2012년까지 5차에 걸쳐 성서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이곡동을 비롯한 성서 일대는 과거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공단과 관공서, 아파트 단지 중심의 신도시로 변화하였다. 성서 일대 마을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마을이 공단에 편입되거나 택지개발로 마을의 해체, 변화, 이주 등을 겪으면서, 옛 마을을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유래비를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1992년 망정부락 유적비를 시작으로 신당동 유래비, 갈미 유허비, 선원마을 유래비, 사령봉 유래비 등 열 기 이상의 유래비가 세워졌다. 이 중에서 배실마을 유래비는 1992년부터 도시개발로 인근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던 배실마을 주민들이 후세에게 고향이라는 정신적 뿌리를 전하고자 1999년 9월 건립하였다.

[위치]

배실마을 유래비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1186-15번지 대로변에 있다.

[형태]

배실마을 유래비는 너비 91㎝, 높이 57㎝, 두께 21㎝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단 위에 표지석이 세워진 형태이다.

[금석문]

배실마을 由來碑

이 마을은 옛부터 배나무가 많아 「배실」, 「뱃골」 또는 漢字 표기로 「梨谷」으로 불리워지던 마을이다.

와룡산 남쪽 아늑한 기슭에 자리잡아 멀리 비슬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는 천혜의 길상지로서 지금으로부터 460여년 전 처음으로 벽진 李씨가 삶의 터전을 열었으나, 임진왜란을 당하여 폐허화 되었다.

그 후 230여년 전 尙武軒 許得良 공의 후손인 許 載라는 사람이 다시 이곳에 정착하여 대대로 金海 許씨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그 후 의성 金씨, 수성 羅씨, 경주 李씨, 창원 黃씨 등 여러 姓氏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순박하고 부지런했으며, 예의를 숭상하고 학문에 힘을 써 많은 선비와 효자효부가 태어났기로 가히 鄒魯之鄕이라 불릴 만하였다.

그러나 世波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이곳의 행정구역도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으니, 1914년에는 인근 仙源, 史令峯[史令奉의 오자로 보임], 불미골과 합쳐 달성군 성서면 이곡 1동으로 되더니 성서면이 대구시에 편입되어 지금은 달서구 이곡동으로 변하였다.

드디어 1992년 마침내 이곳까지 도시개발이 확산되어 문전옥답이던 마을앞들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梨谷池는 구민운동장으로 변했으며 살던 마을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 어찌 桑田碧海라 하지 않으리오. 이에 조상 대대로 이 땅을 지켜오던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옛터 한자리에 마을 由來를 새겨 이 돌을 남기고자 한다.

己卯 서기 1999년 9월

동민 일동 삼가 세움

[현황]

배실마을 유래비는 ‘배실마을’ 표지석과 함께 있다. 또 그 옆에는 울타리 안에 오래된 팽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울타리 안의 팽나무는 대구광역시 보호수 지정 번호 7-7로 지정된 이곡동 팽나무이다. 이곡동 팽나무는 오랫동안 배실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이자 정자나무 구실을 하여 온 마을 나무이다.

[의의와 평가]

배실마을 유래비에는 지명 유래, 마을 역사, 주민 성씨,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옛 지명이나 지역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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