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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801
한자 金世濂
영어공식명칭 Kim Seryeom
이칭/별칭 도원(道源),동명(東溟),문강공(文康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3년연표보기 - 김세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김세렴 생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김세렴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6년 - 김세렴 증광 문과 장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6년 - 김세렴 예조 좌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6년 - 김세렴 홍문관 수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6년 - 김세렴 성균관 전적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7년 - 김세렴 사간원 정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7년 - 김세렴 평안도 곽산군 유배
활동 시기/일시 1618년 - 김세렴 강원도 강릉부 이배
활동 시기/일시 1630년 - 김세렴 홍문관 부교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0년 - 김세렴 전라도 암행어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31년 - 김세렴 현풍 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김세렴 일본 통신사 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김세렴 승정원 승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김세렴 병조 참의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김세렴 사간원 대사간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9년 - 김세렴 성균관 대사성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1년 - 김세렴 안변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2년 - 김세렴 함경도 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4년 - 김세렴 평안도 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5년 - 김세렴 사헌부 대사헌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5년 - 김세렴 호조 판서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46년연표보기 - 김세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75년 - 김세렴 문강 추시
묘소|단소 김세렴 묘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운암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선산
대표 관직|경력 호조 판서|현풍 현감

[정의]

조선 후기 현풍 현감을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도원(道源), 호는 동명(東溟). 증조할아버지는 영유 현령(永柔縣令)을 지낸 김홍우(金弘遇)이고, 할아버지는 영흥 부사(永興府使)를 지낸 김효원(金孝元)이다. 아버지는 통천 군수(通川郡守)를 지낸 김극건(金克鍵)이며, 어머니는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을 지낸 허봉(許篈)의 딸 양천 허씨(陽川許氏)이다. 부인은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유희발(柳希發)의 딸 증정부인(贈貞夫人) 문화 유씨(文化柳氏)와 증병조 참판(贈兵曹參判) 유성민(柳成民)의 딸 증정부인 문화 유씨이다.

[활동 사항]

김세렴(金世濂)[1593~1646]은 1615년(광해군 7) 생원·진사 양시(兩試)에 급제하였으며, 1616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장원 급제하였다. 그해 바로 예조 좌랑(禮曹佐郞)·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다. 1617년(광해군 9)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있으면서 인목 대비(仁穆大妃) 폐비에 반대하다 평안도 곽산군으로 유배를 갔다. 이듬해 강원도 강릉부로 유배지를 옮겼는데, 이때부터 동명(東溟)이란 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다시 관직에 임명되어 병조 좌랑(兵曹佐郞)·사헌부 헌납(司憲府獻納)·충청도 암행어사(忠淸道暗行御史)·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헌납(獻納)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세자를 배행하였다. 1630년(인조 8) 홍문관 부교리(弘文館副校理)와 전라도 암행어사, 1631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와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631년 11월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자천(自薦)한 반정 공신 이귀(李貴)를 논핵했다는 이유로 종 3품 내직에서 종 6품 외직인 현풍 현감(玄風縣監)으로 강등되었다. 현풍 현감으로 부임한 김세렴은 재임 중 많은 치적을 쌓았다. 학규(學規)와 향약(鄕約)을 직접 제정하는 등 교화 정책에 힘썼다. 5년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자 현풍현의 백성들이 김세렴의 선정을 기리고자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1636년(인조 14) 일본 통신사 부사(日本通信士副使)에 임명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1638년(인조 16)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병조 참의(兵曹參議)·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1639년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고, 1641년(인조 19)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부임하였다. 1642년(인조 20)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였다. 1644년(인조 22) 평안도 관찰사, 1645년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호조 판서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11권 7책의 『동명집(東溟集)』이 전한다. 『동명집』에 수록된 『해사록(海槎錄)』은 김세렴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쓴 일기로, 당시 정세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또한 『동명집』에는 현풍 현감 시절 김세렴이 직접 제정한 「현풍현 학규(玄風縣學規)」와 「현풍현 향약(玄風縣鄕約)」이 수록되어 있다.

[묘소]

묘는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운암리 태봉산(台峯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75년(숙종 1) 문강(文康)을 시호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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