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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 가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334
한자 金忠善 歌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71년 - 김충선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42년 - 김충선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김충선 가사 목활자로 간행된 『모하당실기』에 수록
성격 가사
작가 김충선

[정의]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대구 지역에 정착한 김충선이 70세 때 지은 가사.

[개설]

김충선(金忠善)[1571~1642]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때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침략하였다가 조선이 예양(禮讓)의 나라임을 알고 귀화하였고, 왜적을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 일본명은 사야카[沙也可]이며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김충선은 여러 편의 한시와 국문시가를 남겼는데, 가사 작품은 『모하당실기(慕夏堂實記)』 2권에 「모하당술회가(慕夏堂述懷歌)」가 수록되어 있다. 김충선의 세거지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이다. 우록리에는 김충선을 배향하는 녹동서원(鹿洞書院)이 있다.

[내용]

김충선의 가사 작품인 「모하당술회가」는 총 231행의 장편가사이다. 3·4조가 전체의 67%, 2·3조가 7구이다. 약 70%가 전기가사의 전통적 가락을 차지하고 있다.

「모하당술회가」는 크게 보면 8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어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제1단락[1행~22행]은 “어와 이내 평생 흉험(凶險)도 할셔이고 ~ 웅장하다 대마도는 동국(東國)이 여기로다”이다. 한탄조 서술로 시작하여 남쪽 오랑캐 당에서 생장(生長)하여 모하(慕夏)의 인생관을 두고 있다가, 때마침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가 투항할 결심을 은밀히 품고 상륙하기까지의 내력과 그 심회를 술회하였다.

제2단락[23행~41행]은 “흑룡세(黑龍歲) 흑사월(黑蛇月)에 도해(渡海)를 하단 말가 ~ 동방 성군 뫼압고저 만고태평 누리리라”이다. 상륙하여 조선의 의관문물(衣冠文物)을 친히 보고 귀화하여 그 기쁨을 읊조리고 있다.

제3단락[42행~79행]은 “용략(勇略)을 다시 내고 장기(壯氣)를 수습하여 ~ 헌처구중(獻捷九重) 하온 후에 영남 전거(奠居) 시겼으니”이다. 임진왜란 7년 동안 혁혁한 공을 세워 임금으로부터 가선(嘉善)과 자헌(資憲)의 가자(加資)에 이어 사성명(賜姓名) 받은 것에 감읍한 심회를 읊었다.

제4단락[80행~110행]은 “인묘조(仁廟朝) 갑자세(甲子歲)에 역괄(逆适)이 모반할 제 ~ 수어청(守禦廳) 둔전(屯田) 삼아 군량을 보태리라”이다. 인조(仁祖)[1595~1649] 때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전패(田牌)를 하사받았지만 고사하고 수어청 둔전으로 상납한다는 내용이다.

제5단락[111행~131행]은 “임갑양란(壬甲兩亂) 평정 후에 설마 국난 또 있을까 ~ 오늘날 부귀공명 천고에 없을시고”이다. 북방 지역이 소요하매 자원하여 10년을 방어하고 그 공으로 임금을 알현하고 성은에 감읍하고 있다.

제6단락[132행~190행]은 “천계(天階)에 하직하고 향리에 돌아오니 ~ 막비천운 시켰으니 애달픈들 어찌하리”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당시 항복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모화배호(慕華排胡)할 결심을 다짐하고 있다.

제7단락[191행~224행]은 “필마로 다시 몰아 우록촌 돌아올 제 ~ 평생에 원한 바를 낱낱이 아위서라”이다. 만년에 우록동으로 귀향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며 자손과 향민들에게 교훈하고 있다.

제8단락[225행~231행]은 “남풍이 때로 불 제 고국을 생각하니 ~ 아마도 세상의 흉한 팔자는 나 하나뿐인가 하노라”이다. 고국에 두고 온 혈육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특징]

김충선의 가사 「모하당술회가」는 양식면에서는 서사적 서정 가사이고, 내용면에서는 전기문학이자 전쟁문학이다. 또한 귀화인 문학이자, 귀족문학이다. 표현 기법이 뛰어나며 작자의 심회가 곡진하게 잘 드러나 있다.

[의의와 평가]

「모하당술회가」는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충선이 70세에 지은 가사이다. 김충선의 일생을 적실하게 표현하였으며, 마지막에 고국에 두고 온 골육들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진실하게 표현하였다. 가사 문학상 분명한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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