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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522
한자 一直孫氏[東區]
영어공식명칭 Iljik S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650년연표보기 - 일직손씨 입향
본관 일직 - 경상북도 안동시
입향지 일직손씨 입향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일직손씨 집성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성씨 시조 손응
입향 시조 손홍주

[정의]

고려시대 송나라의 난세를 피해 우리나라에 귀화한 손응을 시조로 하고, 손홍주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세거한 성씨.

[개설]

일직손씨 중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대표적 인물로는 손처눌이 있다.

[연원]

일직손씨(一直孫氏)안동손씨(安東孫氏)로 불리기도 한다. 시조는 손응(孫凝)으로, 중국 송나라 2대 위(魏)왕, 3대 기(冀)왕 때 황제 등극을 두고 내란이 일어나자 왕족 및 귀족 세력과 함께 고려로 망명·귀화하였다. 원래 성은 순(荀)이였으나 고려 제8대 왕 현종의 이름 순(詢)과 발음이 같다고 하여 손씨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후의 세계는 분명하지 않으며 후손들은 고려 후기 복주부원군(福州府院君)에 봉해진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을 일직손씨의 중시조로 삼는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일직손씨는 정평공 손홍량의 후손들이다.

[입향 경위]

고려 후기 복주부원군(福州府院君)에 봉해진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은 안동시 일직면에서 태어나 40여 년 동안 나라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에 만년에 고향 일직에 은거하였다. 손홍량은 밀직사를 지낸 손득수(孫得壽)와 전공판서를 지낸 손득령(孫得齡) 두 아들을 두었고, 손득수의 손자 손관(孫寬)은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리로 이사하여 살면서 오늘날 밀양군 산외면 다원리(茶院里)를 비롯한 영천시, 김해시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한편, 손관의 현손 손세경(孫世卿)은 외조부인 부사 주계숙(朱繼叔)의 외손봉사를 위해 밀양시에서 대구광역시로 이거하여 일직손씨 대구 입향조가 되었다. 손세경은 바로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의 증조부이다. 모당 손처눌은 대구부 수성리(壽城里)[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태어났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부모의 묘소가 있는 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이거하여 살았다. 손처눌의 손자 손홍주(孫弘冑)는 외가인 신기 샛터[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이거하여 정착함으로써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일직손씨 입향조가 되었고, 손홍주의 후손들이 이곳에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황]

일직손씨는 손홍주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입향한 이래로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거주하고 있으나, 현재는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집성촌으로서 기능이 약화되었다. 그렇지만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일직손씨>추보재(追報齋)를 중심으로 수성구의 일직손씨와 함께 가문의 친목과 가풍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 유적]

일직손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추보재(追報齋),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손홍주 장악원정 묘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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