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서당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69
한자 靑湖書堂記
영어공식명칭 A record about Chung-Ho seodang
이칭/별칭 청호서당의 기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79-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42년 - 이만도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10년 - 이만도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16년 - 『향산집』 간행
배경 지역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지도보기
성격 잡기류|기문
작가 이만도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청호서당에 대하여 개항기 애국지사 이만도가 지은 기문.

[개설]

「청호서당기(靑湖書堂記)」를 쓴 이만도(李晩燾)[1842~1910]는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는 관필(觀必)이고, 호는 향산(響山)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병탄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단식을 결행한 끝에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청호서당기」의 배경이 되는 청호서원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제향하고 있다. 손처눌은 생전에 청호서당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1694년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여 손처눌의 6대조인 손조서손처눌의 위패를 모셨다. 1755년 유시번을 추가 배향하고, 1764년 정호인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4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30여 년 후 후손들에 의하여 옛터에 6칸 규모의 서당이 세워졌고, 30여 년이 흘러 1930년 중건이 완료되었다. 196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69년 상인사(尙仁祠)를 중건하였고, 1972년 청호서원으로 복원되었다.

[구성]

「청호서당기」는 서본결의 3단 구성을 이룬다.

[내용]

「청호서당기」는 서문에 청호서당의 위치와 제향 인물을 소개하고 기문을 쓰게 된 계기를 적고 있다. 본문에서는 제향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더하고 제향 인물들의 덕성과 행실이 후대에 끼친 영향을 칭송하였다. 대표적으로 격재 손조서의 시를 제시하여 몸소 실천하였던 평생의 경계를 나타내었다. 결문에서는 학문에 몰입하였던 모당 손처눌의 생애와 후진 양성에 힘썼던 공열을 기리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특징]

「청호서당기」는 제향 인물인 손조서, 손처눌, 유시번, 정호인에 대한 칭송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의의와 평가]

「청호서당기」는 기문의 정격 형식과 변격의 형식이 아우른다. 정격 형식의 사실 정보 전달과 변격 형식의 의론이 동시에 존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청호서당기」를 통하여 현재 전하지 않는 청호서원의 전신인 청호서당의 근대 개항기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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