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용천사 감구유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40
한자 入湧泉寺 感舊有吟
영어공식명칭 When I Visited The Yongcheon Temple, I Thought Of The Old Days And Recited A Poem
이칭/별칭 「용천사에서 옛 생각에 시를 읊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3년 - 「입용천사 감구유음」 저자 손처눌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12년연표보기 - 「입용천사 감구유음」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4년 - 「입용천사 감구유음」 저자 손처눌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84년 - 『모당집』에 「입용천사 감구유음」 수록하여 간행
배경 지역 용천사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헐티로 1375-9[오산리 1062]
배경 지역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오언율시
작가 손처눌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612년 용천사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개설]

「입용천사 감구유음(入湧泉寺 感舊有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곽재겸(郭再謙)[1547~1615], 류요신(柳堯臣)[1550~1618]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발발하자 대구의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용천사(湧泉寺)는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비슬산(琵瑟山)에 있는 사찰이다. 670년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 2001년 발행한 『국역 모당선생문집(國譯慕堂先生文集)』에서는 「입용천사 감구유음」의 제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이하여 「용천사에서 옛 생각에 시를 읊다」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입용천사 감구유음」은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내용]

사억증유일(寺憶曾遊日)[절에서 일찍 놀던 날 떠올리니]

성상이십년(星霜二十年)[벌써 20년 세월이 흘렀구나]

의희교목외(依俙喬木外)[교목 밖 풍경 예전 그대로이고]

방불법당전(髣髴法堂前)[법당 앞 역시 전과 비슷하구나]

화구무원조(話舊無圓照)[옛일 나눌 원조는 지금 없지만]

논시유혜련(論詩有惠連)[시를 논할 사혜련은 여기 있네]

중개전성회(重開全盛會)[온전히 성대한 모임 다시 여니]

불각누산연(不覺淚潸然)[주르르 눈물 흐르는지도 몰랐네]

[특징]

「입용천사 감구유음」은 ‘선(先)’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오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입용천사 감구유음」손처눌이 동생인 손처약(孫處約)[1556~?]과 함께 경상북도 청도군 비슬산에 위치한 용천사를 방문하고 감회를 읊은 시이다. 1612년에 지어진 작품이다. 손처눌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용천사를 방문한 이후 20여 년 만에 찾아왔다. 20여 년 전의 추억을 이야기할 승려는 없지만 다행히도 동생과 함께 다시 용천사를 찾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감회를 노래하고 있다. 당나라 승려인 원조(圓照)와 남조 송나라의 사혜련(謝惠連)을 경련(頸聯)에 등장시켜 미련(尾聯)에서 손처눌이 느끼는 감정의 배경을 마련하였다. 전형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상 전개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8행에 세월의 흐름과 병화(兵禍)의 아픔을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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