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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기독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45
한자 嶠南基督靑年會
영어공식명칭 Gyonam Christian Youth Group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12월 2일연표보기 - 교남기독청년회 설립
최초 설립지 남성정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23[남성로 50]지도보기
성격 청년운동 단체|개신교 단체

[정의]

1921년 대구광역시에서 설립된 개신교 연합 청년 단체.

[개설]

1921년 12월 2일 남성정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일명 구 대구제일교회]에서 대구 지역 소재 교회가 연합하여 ‘교남기독청년회(嶠南基督靑年會) 발회식’을 개최하였다.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 남산교회 목사 박영조, 남산교회 장로 김태연·최종철 등 1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조선기독청년회 회장 이상재가 강연하고자 하였으나 일제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교남기독청년회는 강연회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여 계몽운동 및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2월 9일~1922년 2월 10일 남성정교회에서 이상재 외 2명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922년 11월 8일 대구기독청년회 종교부 주최로 ‘조선의 장래는 교육이냐 실업이냐’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남산교회 장로 백남채와 이종화가 주장하였던 교육 편이 승리하였다고 한다. 또한 교남기독청년회대구청년회, 조선불교청년회, 해성명도회, 여자기독청년회, 동아일보 대구지국과 함께 1923년 2월 10일 대구청년회관에서 ‘단연금주 토산장려선전 연합회연설대회’를 개최하고 대구 물산장려운동을 이끌었다.

또한 북간도에 있는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가 제반 설비 부족과 경비 부족으로 학교 운영이 어렵게 되자 교남기독청년회는 1924년 4월 대구청년회, 대구여자청년회, 대구기독여자청년회, 불교청년회, 시대일보 대구지국, 조선일보 대구지국, 동아일보 대구지국, 매일신보 대구지국, 대구교육자회, 대구구락부 등과 연합하여 대구후원회를 조직하고 기부금을 모집하였다. 이와 함께 연극회, 정구 대회, 축구 대회, 운동회 등을 개최하여 문화운동을 펼쳤고 체육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현황]

교남기독청년회의 창립총회 당시 회장 이만집, 부회장 최종철, 총무 김태련, 명예 총무 현거선, 종교부장 박영조, 교육부장 백남채, 사교부장 정광순, 체육부장 정상호, 재무부 이희봉, 서기 최경학 외 1인, 회계 이경욱, 각부 간사 14인, 이사 12인이 선출되었다. 이만집, 김태련, 백남채, 정광순, 최경학 등은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대구3·8서문밖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참여하였던 인물들이다.

[의의와 평가]

교남기독청년회는 1920년대 대구 지역에서 실력양성운동을 펼치며 종교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에 나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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