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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단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02
한자 大明壇-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306[대명동 30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대명단터 -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306[대명동 306]지도보기
성격 제단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대구에 정착한 두사충이 명나라에 제향을 드렸다는 제단.

[개설]

대명단터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정착한 명나라 사람 두사충(杜師忠)이 고국을 그리며 매월 명나라를 향하여 제를 드렸다는 제단이다. 대명단의 정확한 위치는 오랫동안 논란의 되어 왔다. 2022년 현재는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306[대명동 306]인 것으로 되어 있다.

[건립 경위]

두사충은 명나라 사람이다.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명나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조선에 정착하였다. 두사충이 쓴 『모명실기(慕明實紀)』의 자서(自序)에 의하면 “대구[達句縣]의 최정산(最頂山) 아래 살면서 자호(自號)를 ‘모명(慕明)’, 동리를 ‘대명(大明)’이라 하고 동네 밖에 단(壇)을 설치하여 매월 초하루에 공복(公服)을 입고 북쪽으로 망배(望拜)를 드렸다”라고 하였다.

1768년(영조 44)에 편찬된 『대구읍지(大丘邑誌)』에 의하면 “최정산은 부(府)의 남쪽으로 20리쯤 있다. 가파르고 험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사방이 모두 막혀 있다”라고 하였는데, 지도에 표기된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일대이다. 지금의 대덕산, 앞산으로 불리는 산은 같은 『대구읍지』에 ‘성불산(成佛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두 산은 다른 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사충이 단을 쌓고 매월 북쪽 명나라를 향하여 제향을 드렸다고 하는 제단은 최정산 자락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정산의 영역을 확대한다고 하여도 지금의 대덕산 자락까지 확대될 수는 없다.

대구광역시 남구청 홈페이지의 ‘대명단터’에 의하면 “그동안 대명단의 위치에 대해서는 최정산[대덕산] 아래로만 추측할 뿐 명확한 기록을 찾지 못하였다. 최근 그의 14대 종손인 두남택(杜南澤)의 「모명선생래한사기발(慕明先生來韓史記跋)」에서 관련 기록을 발굴, 최정산 아래 경마장 서쪽 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따라서 현재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11동 306번지에 있는 구 경마장 서쪽 편 마을 입구에 대명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지금의 대명동(大明洞)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는 대구부(大丘府) 하수서면(下守西面)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에 대명리(大明里)라는 동리는 없다. 따라서 위 내용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치]

대명단터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위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 일대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두사충의 제단 터를 고증하는 방법과 과정은 역사적인 자료를 활용하여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남구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고증 방법은 신뢰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의 대명동에 해당하는 조선조 행정구역인 대구부 하수서면에 ‘대명리’라는 동리가 없다는 사실은 두사충 제단과 지금의 대명동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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