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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445
한자 楊達和
영어공식명칭 Yang Dalhwa
이칭/별칭 태삼(泰三),지촌(池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4년연표보기 - 양달화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56년 5월 16일연표보기 - 양달화 사망
출생지 지산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지산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양달화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남성
본관 중화(中和)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가계]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아버지는 양시진(楊時震)이고,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활동 사항]

양달화는 1694년(숙종 20)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서 태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조상을 숭상하는 마음이 컸다. 마을에 지촌서당(池村書堂)을 지어 강학하였다. 문중의 장손(長孫)이 후손 없이 사망하자 승중손(承重孫)을 세워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양달화의 이러한 노력으로 중화양씨는 지역에서 큰 문중이 되었다. 양달화는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1756년(영조 32) 5월 16일 사망하였다.

[묘소]

양달화의 묘소는 수성구 황금동 괘명산(掛椧山)에 있다. 묘갈명은 1987년에 후손 양정규(楊貞圭)가 지었다.

[상훈과 추모]

양달화가 강학하던 지촌서당 자리에 후손들이 학산재(鶴山齋)를 건립하여 추모하고 있다. 1917년 독립운동가인 시암(是菴) 이직현(李直鉉)이 방문하여 지은 시가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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