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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944
한자 任鳳善
영어공식명칭 Lim Bongs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0월 10일연표보기 - 임봉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8일 - 임봉선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8일 - 임봉선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23년 2월 10일연표보기 - 임봉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임봉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진평동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여성
대표 경력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임봉선(林鳳善)[1897~1923]은 1897년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임봉선은 평양숭실학교 학생 김무생(金武生)과 김천예수교회 전도사 박재원(朴齋元)으로부터 서울과 평양의 여성 활약상을 듣고 만세 시위에 참여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 허범(許範)도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이재인(李在寅)과 협의한 뒤 임봉선에게 학생 동원을 부탁하였다.

1919년 3월 8일 임봉선은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50여 명과 함께 머리와 허리를 수건으로 졸라매고 서문시장 근처에 집결하였고, 오후 3시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李萬執)의 연설과 남산교회 조사 김태련(金兌鍊)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계성학교·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합세하여 시위 군중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문시장을 나선 시위대는 대구경찰서와 종로를 거쳐 동성로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동성로에 있던 달성군청에 이르자 기관총과 착검한 소총으로 무장한 일제 군경은 시위 군중을 폭압적으로 진압하여 157명을 검거하고 그중 67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때 임봉선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임봉선은 1923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임봉선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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