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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시서화연구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70
한자 嶠南詩書畵硏究會
이칭/별칭 영남서화회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성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 1월 15일연표보기 - 교남시서화연구회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2년 1월 22일 - 교남시서화연구회 제1회 총회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2년 5월 14일 - 교남시서화연구회 제1회 전람회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3년 11월 12일 - 교남시서화연구회 제2회 전람회
해체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교남시서화연구회 해체
성격 미술 단체
설립자 서병오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미술 단체.

[개설]

교남시서화연구회(嶠南詩書畵硏究會)에서 ‘교남’은 영남 지방을 뜻한다. 1922년 1월 15일 설립되었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41년 연구 활동이 중단되고 영남서화회로 발전하였다.

[설립 목적]

교남서화연구회는 후진을 위한 강습소 운영, 서화 전람회 개최, 도서관 설립 운동 등을 목적으로 둔 단체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교남시서화연구회의 회원은 특별회원[강습생], 보통회원[서화연구원], 찬조회원[동정금 기부인]으로 나누어진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22년 1월 22일 제1회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회장으로 서병오(徐丙五), 부회장은 박기준이 임명되었다. 강사로는 정용기, 서병주가 임명되었으며 총무로는 이영면, 김재환이 임명되었다. 이사로는 김홍기, 회계로는 서창규를 두었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22년 5월 14일 제1회 전람회를 가졌는데, 주제는 ‘고대명작서화’였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23년 11월 12일 제2회 전람회를 가졌다. 서병오의 「난초」 외에도 여러 작가들이 40여 점을 출품하였다. 교남시서화연구회서병오 사후에도 서병오의 대표적인 문도였던 서동균이 뒤를 이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의의와 평가]

교남시서화연구회는 대구 화단의 예술적 분위기를 진작하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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