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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읍 자모리 연안차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033
한자 玄風邑 自慕里 延安車氏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자모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
성격 집성촌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에 있는 연안 차씨 집성촌.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는 연안차씨(延安車氏) 집성촌이다. 자모리는 1599년(선조 32) 임진왜란 때 현 달성군 논공읍 하리에 살던 연안인 선비 차순라(車順羅)가 네 명의 아들인 차명상(車命尙), 차명용(車命容), 차극생(車克生), 차극상(車克常)을 데리고 피난 온 곳이라고 한다. 그 후 이 마을에 정착하고 자손들이 모여 살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 대부분이 연안차씨였으나 지금은 이농하여 그 수가 줄어들었다.

[명칭 유래]

자모리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본래 대구직할시 현풍군 모로촌면의 소재지로서 예부터 자무리 또는 모로촌이라 하였다가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현풍현은 1457년(세조 3) 진관 체제(鎭管體制)의 확정 이후 대구도(大丘道)의 좌익에 편입되어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편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적인 지방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달성군 지역은 대구부 대구군과 현풍군으로 나누어졌고, 이듬해 13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5년 성주군 노곡면이 현풍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구의 시가지가 대구부로 승격되면서 대구군의 나머지 지역과 현풍군이 통폐합되어 달성군으로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의 뒷편을 많은 고개들이 굽이쳐 있고, 마을 앞을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이 충적 평야를 형성하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지형이다.

[현황]

마을에는 1924년에 건립한 차세미의 추모 재사 모원재(慕遠齋)가 있어 차씨 문중을 상징하고 있다. 마을 남쪽 끝쯤의 장방형 대지에 위치하는 모원재는 대청 두 칸을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들인 네 칸 일자형 평면으로 지붕은 골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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