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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453
한자 公州忠淸監營測雨器
영어공식명칭 Rain Gauge of Chungcheong Provincial Office, Gongju
이칭/별칭 금영측우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엄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12월 21일연표보기 -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보물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9년 12월 31일연표보기 -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보물 지정 해지
문화재 지정 일시 2020년 2월 27일연표보기 -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국보 지정
원 소장처 기상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16길 61[신대방동 460-18]지도보기
현 소장처 국립기상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52[송월동 1-1]지도보기
성격 조선 후기[19세기] 청동 측우기
재질 청동
크기(높이,길이,너비) 높이 31.5㎝|지름 29.4㎝
소유자 국유
관리자 기상청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소장했었던 1837년 청동으로 제작한 측우기.

[개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公州忠淸監營測雨器)는 1837년(헌종 3) 청동으로 제작된 측우기로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측우기이다. 금영측우기라고도 불린다.

1602년(선조 35) 이후 공주의 충청감영에 보관되어 오다가, 1915년 경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1859~1918]가 국외로 반출하였다. 이후 1971년 일본에서 환수되어 1971년 12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0년 2월 27일 그 가치를 인정받아 다시 국보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기상청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의 국립기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형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는 상·중·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중·하단의 길이는 각각 10.6㎝, 10.5㎝, 10.3㎝이며 세 단을 분해할 수 있고, 사용할 때에는 꼭 맞게 조정하여 쓰게 되어 있다. 원통형의 표면 3곳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있다.

몸통의 마디 사이에는 ‘금영 측우기 고일척오촌 경칠촌 도광정유제 중십일근(錦營 測雨器 高一尺五寸 徑七寸 道光丁酉製 重十一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이 측우기가 도광(道光) 연간의 정유년(丁酉年), 즉 1837년(헌종 3)에 높이 1척 5촌, 지름 7촌, 무게 11근으로 제작되어 충청도 감영인 금영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그란 통은 빗물을 받는 그릇으로 여기에 주척(周尺)이라 부르는 자가 있어 측우기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쟀던 것으로 보인다.

[특징]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는 1441년(세종 23)에 만들어진 후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837년(헌종 3)에 만들어진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가 유일하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는 원통형의 표면 3곳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눈에 띈다. 원통형의 동그란 통은 빗물을 받는 그릇의 용도이고, 여기에 주척이라 부르는 자가 있어 측우기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는 방식이었다.

한편 화강석 받침, 즉 대석(臺石)으로 남아 있는 것은 대구 선화당 측우대 등이 있다. 대구 선화당 측우대의 경우 제작 연대가 남아 있는데, 명문에 따르면 1770년(영조 46)에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대구 감영에 있던 측우대였기 때문에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는 별도의 것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의 측우기 관련 유물로 측우기를 설치했던 대석은 몇 기가 남아 있지만, 빗물을 담는 그릇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유일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또한 19세기에 만들어졌으나, 조선 전기 이후 전국적인 규모로 강수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던 전통이 유지되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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