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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06
한자 李正英
이칭/별칭 자수(子修),서곡(西谷),효간(孝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선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6년연표보기 - 이정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이정영 별시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47년 - 이정영 부수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77년 - 이정영 형조판서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5년 - 이정영 기로소 입소
몰년 시기/일시 1686년연표보기 - 이정영 사망
묘소|단소 효간공 이정영 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79|산44-7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 이조판서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이정영(李正英)[1616~168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자수(子修), 호는 서곡(西谷)이다. 이수광(李秀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간(李惟侃)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 이경직(李景稷)이며, 어머니는 첨지 오경지(吳景智)의 딸이다. 이경직의 동생인 이경석은 영의정을 지냈다.

[활동 사항]

1636년(인조 1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소현세자가 심양(瀋陽)으로 갈 때 호종하였다가 귀국하였다. 1642년(인조 20)에 정언을 거쳐 사서(司書)에 임명되었다. 1647년(인조 25)에 부수찬이 되었다가 다음해에 수찬이 되었다. 이후 몇 년간에 수찬·교리·정언 등에 체차되며 관직생활을 하였다. 『인조실록』을 만드는데 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한 뒤 다시 정언·교리·헌납 등을 지냈다.

1657년(효종 8) 종부시정·사인·사간을 거쳐 1659년 병조참의·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에 부총관·병조참판·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64년에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666년에 내직으로 돌아와 예조참판에 임명되었다. 다음해에 도승지를 거쳐 판윤이 되었다. 1669년에 우윤으로 보전문서사관(寶篆文書寫官)이 되었다. 1671년 개성유수를 거쳐 다음해에 한성부판윤에 재임 중 동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시 다녀왔다. 1674년 산릉도감 당상을 맡아 국장에 참여하였다. 이후 이조판서가 되고, 1677년(숙종 3) 형조판서를 지냈다. 1680년(숙종 6)에 판돈녕부사를 역임하고, 1685년(숙종 11) 판의금부사를 거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다음해에 7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예서(隷書)가 뛰어나서 공사의 금석문을 많이 남겼다. 글씨로는 「민기신도비(閔箕神道碑)」·「이순신명량대첩비(李舜臣鳴梁大捷碑)」·「영안위홍주원비(永安尉洪柱元碑)」·「호판이경직비(戶判李景稷碑)」·「판추김시양비(判樞金時讓碑)」·「감사강홍중비(監司姜弘重碑)」·「형참이소한비(刑參李昭漢碑)」·「정여창비(鄭汝昌碑)」·「예참홍주국비(禮參洪柱國碑)」 등이 있다. 효성이 지극하다고 평가받았다.

[묘소]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79, 산44-7에 있다.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이 있고 좌우로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있다. 1994년 5월 1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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