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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09
한자 鄭惟吉
영어공식명칭 Jeong Yugil
이칭/별칭 길원(吉元),임당(林塘),상덕재(尚德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15년연표보기 - 정유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31년 - 정유길 사마시(司馬試)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38년 - 정유길 알성별시(謁聖別試) 문과(文科)에 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538년 - 정유길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에 이어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4년 - 정유길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등과 동호서당(東湖書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활동 시기/일시 1546년 - 정유길 의정부(議政府) 검상(檢祥)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7년 4월 - 정유길 의정부 사인(舍人)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7년 6월 - 정유길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7년 12월 - 정유길 사복시(司僕寺) 부정(副正)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8년 1월 - 정유길 홍문관(弘文館) 부교리(副校理)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8년 9월 - 정유길 홍문관 응교(應敎)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49년 - 정유길 홍문관 직제학(直提學)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50년 - 정유길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51년 - 정유길 승정원 우승지(右承旨)에 제수, 이어 도승지(都承旨)로 승진
활동 시기/일시 1552년 - 정유길 부친 정복겸(鄭福謙) 사망, 복상(服喪)
활동 시기/일시 1554년 - 정유길 6월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에 제수. 10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특가(特加)됨. 10월 도승지(都承旨)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55년 - 정유길 중추부(中樞府) 동지사(同知事)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56년 - 정유길 도승지 직무에 태만했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체직(遞職)
활동 시기/일시 1558년 - 정유길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59년 2월 - 정유길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59년 3월 - 정유길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60년 - 정유길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62년 - 정유길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67년 - 정유길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파견
활동 시기/일시 1568년 - 정유길 경상도 관찰사(觀察使)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69년 - 정유길 경기도 관찰사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81년 - 정유길 사직
활동 시기/일시 1583년 - 정유길 우의정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84년 - 정유길 기로소 입소
활동 시기/일시 1585년 - 정유길 좌의정(左議政)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588년연표보기 - 정유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46년 - 임당정공신도비 건립
묘소|단소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東萊鄭氏林塘公派墓域)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東萊鄭氏林塘公派墓域)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동래
대표 관직 좌의정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개설]

정유길(鄭惟吉)[1515~1588]은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손자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출사한 이래 좌의정까지 올랐다. 정유길을 비롯하여 고관에 오른 동래 정씨 후손 4대가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함께 안장되었다.

[가계]

정유길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길원(吉元), 호는 임당(林塘), 상덕재(尚德齋)이다. 할아버지는 중종 대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이며, 아버지는 강화부사(江華府使) 정복겸(鄭福謙)이다. 부인은 원주 원씨(原州元氏), 아들은 광해군과 인조 대 좌의정에 오른 정창연(鄭昌衍)이며, 손자는 인조 대 도승지(都承旨)를 지낸 정광성(鄭廣成)이다. 병자호란 시기 척화를 주장했던 김상헌(金尙憲)과 강화성 함락시 자결한 김상용(金尚容) 형제가 정유길의 외손이다.

[활동 사항]

정유길은 1538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 전적(典籍)에 초임된 이래 사간원, 사헌부, 승정원, 예조와 이조 등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1568년과 1569년 경상도와 경기도의 관찰사를 지낼 때는 죄에 비해 무거운 형벌을 받은 이들을 조사하여 경감시키는 등 민생을 보살핀 것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또 1567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1572년에는 예조판서로서 명나라의 사신을 능숙히 접대하는 등 외교적 능력도 뛰어났다. 정유길과 아들인 정창연 모두 벼슬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학문과 저술]

학문(學問)과 시문(詩文)에 뛰어나 1544년 젊은 문신에게 휴가를 내려 학문을 익히게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이황(李滉) 등과 함께 선발되었다. 1554년에는 명종이 문신들의 시작(詩作) 능력을 시험할 때 율시(律詩)로 수석을 차지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특가(特加)되기도 했다. 서예에도 능하여 정유길의 서체를 ‘임당체(林塘體)’라 부르기도 한다. 작품으로 「한기비(韓琦碑)」가 있으며, 문집으로 『임당유고(林塘遺稿)』 2권 2책이 전한다.

[묘소]

부인인 원주 원씨(原州元氏), 아들 정창연(鄭昌衍), 손자 정광성(鄭廣成) 등이 함께 묻힌 묘역이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에 위치한다. 할아버지 정광필과 아버지 정복겸은 현재의 경기도 군포시에 안장되었으나 정유길로부터 시작하여 고손자까지 총 5대가 관악산 자락 사당동 지역에 별도의 묘역을 형성하게 되었다. 정유길 이래로 수대에 걸쳐 정승을 비롯한 고관을 배출하게 되면서 도성 가까운 곳에 선영을 마련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1646년 정유길의 덕행을 기리는 임당정공신도비(林塘鄭公神道碑)가 세워졌다. 비문은 외손인 김상헌(金尙憲)이 찬했으며 비석 몸체의 두전(頭篆)은 김광욱(金光煜), 본문의 글씨는 오준(吳竣)이 썼다. 198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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