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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79
한자 嚴鴻燮
영어공식명칭 Um Hong She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엄홍섭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2년 - 엄홍섭 일본 메이지(明治)대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46년 9월 - 엄홍섭 육군사관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50년 8월 - 엄홍섭 육군본부 공병감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6월 - 엄홍섭 전역
출생지 엄홍섭 출생지 - 경기도 수원시
성격 군인
성별
대표 경력 공병감

[정의]

6·25전쟁 당시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군인.

[활동 사항]

엄홍섭(嚴鴻燮)[1917~ ]은 1917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였다. 1942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일본군으로 공병 소위와 보병 대위로 복무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9월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47년 7월 중위, 1948년 7월 대위, 1949년에는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1950년 6월 17일부터 25일까지 육군공병학교를 수료하였다.

6·25전쟁 초반 대한민국 정부 내에서는 ‘서울 고수’와 ‘한강선 방어’의 기로에서 ‘서울 고수’의 전략을 채택하여 모든 예비전력을 서울 북방에 주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격작전이 어렵게 되자 6월 27일 서울 철수를 결정하고 해·공군 본부는 수원으로 육군본부는 시흥 육군보병학교로 이동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북한군이 서울 시내에 들어오기 2시간 전에 한강교[한강대교, 철교 3개소, 광진교]를 동시 폭파할 것을 결정하였다. 또한 교량 폭파 후에는 공병대가 전선에서 후퇴하는 병력을 도하시키기 위하여 공병 보트 18척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한강교의 폭파 논의는 이미 27일 비상국무회의에서 이범석 전 국무총리가 언급한 적이 있었으며, 직접적인 준비는 채병덕 총참모장이 최창식(崔昌植) 공병감(工兵監)에게 한강교 폭파준비를 지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최창식은 공병학교장 엄홍섭에게 폭파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였고, 엄홍섭은 남한강파출소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황원회(黃元會) 중위와 이창복(李昌馥) 중위에게 폭파임무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28일 새벽 2시 30분 경 한강교는 폭파되었고, 피난민들이 대교 위에 있는 상황에서 교량이 폭파되었기 때문에 희생자가 많았다. 당시 한강교의 폭파는 서울시민의 피난 조치나 전선부대에 대한 철수 명령조차 없는 상태에서 단행된 사건이었다.

1950년 10월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1953년 1월 준장으로 진급하였고, 1950년 8월 육군본부 공병감에 취임하여 10여 년간 활동하였다. 1953년 3월에는 미국 공병학교로 파견되었고, 1960년 6월 육군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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