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의 기적소리가 처음 울려퍼진 곳, 노량진역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001
한자 鐵馬-汽笛-鷺梁津驛
영어공식명칭 As Railway Launching Site, Noryangjin Stati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51[노량진동 67-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현위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경인선의 시발지였던 노량진역에 대한 이야기.

[개설]

노량진역(鷺梁津驛)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발지였던 역이다. 노량진역수도권 전철 1호선 용산역과 대방역 사이와 지하철 9호선 샛강역과 노들역 사이에 위치한다. 이 중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 노량진역은 인천역과 함께 경인선의 시작이자 한국 철도 역사의 시작을 알린 곳으로 1899년 9월 18일 운행을 개시한다.

경인선 부설 목적은 일제를 포함한 제국주의의 구미에 맞도록 수도 한양과 항구 제물포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개설이 되었으며, 이후 원료와 식량을 수탈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목적을 위한 역할과 함께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많은 외지인들의 여객 수송을 목적으로 하였다.

제국주의의 목적으로 개설된 철도는 이후 인근 지역의 공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당시 시종착역이 있던 노량진 일대 역시 철도의 개통과 함께 더욱 번성하여 노량진역은 현재도 중요한 교통축 역할을 한다.

[한국 철도의 기원과 노량진역]

한국 철도의 기원은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874년 독일인 관리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가 한국 교통 구조의 개혁을 주장하며 철도 건설의 필요성을 피력하였으며 이후 서양열강의 등장으로 인하여 과학기술이 도입되며 철도 지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다.

1877년 일본 수신사 일행이 일본 철도에 대한 시승기를 처음으로 소개하였으며, 1885년 서울과 인천 간 전기통신사업이 시작되면서 철도에 대한 인식이 더욱 고조되었다. 1892년 미국인 모스(Morse, J. R.)는 고종황제에게 철도의 건설을 청하였으나 1차 설득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일본 역시 한국 최초의 철도건설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있었으며 결국 영국의 협조로 조선은 철도건설을 위해 1894년 조선 공무이문 철도국을 창설하였다. 이후 1896년 미국인 모스에게 경인선의 부설권이 특허되어 이듬해 1897년 3월 29일 착공이 되었고,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인천 간 33.2㎞의 최초의 철도 노선이 영업을 개시하게 된다.

당시 열차 이용료는 제일 저렴한 등급이 40전이었는데 쌀 한 말 가격이 50전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열차 운임은 매우 비싼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열차를 타기보다는 열차와 역을 구경하는 인파로 노량진역은 붐비는 역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처럼 노량진역은 인천역과 함께 한국 최초의 철도역과 시종착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다만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의 준공과 함께 3일 뒤인 7월 8일에 노량진~서울역[서대문] 구간이 완공되고 경인선이 전 구간 개통되면서 노량진은 시종착역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경인 지역을 축으로 급속히 진행된 도시화에 따라 경인선은 대한민국 발전의 주요 축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특히 인천, 부평, 부천, 구로 지역의 급성장에 따라 노량진역 역시 서울 서남부 지역의 주요 교통의 요지로 계속해서 기능을 하게 된다.

이후 경인선은 교통량이 증가하며 1990년에 복복선화 사업이 착수되었으며 구로역에서 부평역 구간은 1999년 1월, 부평역에서 주안역 구간은 2002년 3월, 주안역에서 동인천 구간은 2005년 12월에 각각 복복선으로 개통되었다. 복복선의 개통으로 노량진역은 급행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경인선의 여객기능은 더욱더 확장하게 된다.

경인선 개통 후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노량진역경인선이 아닌 경부선 노선에 포함이 된다. 현재는 수도권 전철 역할만 할 뿐 일반열차는 정차하지 않는다. 비록 한국 철도의 시발지라는 상징적인 의미는 많이 약해졌으나 노량진역 구내에는 당시 철도가 최초로 개통되던 사진과 운행하던 열차의 흔적이 담긴 미니 철도박물관이 있다.

또,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데, 스탬프에는 철도시발지 기념비가 도안으로 새겨져 있다. 노량진역 철로 옆에 있는 철도시발지 기념비는 1975년 9월 18일 철도청에서 세웠는데, 기념비에는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이 쓴 휘호와 시인 서정주가 작성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동작구 철도 현황]

1899년 한국 최초의 철도역으로서 영업을 시작한 노량진역경인선은 이후 서울의 외연적 확장과 도시철도의 확충으로 인하여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교통량 증가에 따라 경인선이 기존의 복선만으로 많은 교통량을 모두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선로용량을 확대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90년에 복복선화 사업이 착수되어 개통되면서 내선에는 급행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경인선 개통 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노량진역은 현재 경인선이 아닌 경부선 노선에 포함이 되면서 일반열차도 정차하였으나 2005년 1월 20일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천안역까지 연장되면서 현재 일반열차는 정차하지 않는다.

노량진역은 현재 수도권 전철만 운행되는 역이다. 1호선의 1번 승강장은 동인천 급행 전동열차와 천안 급행 전동열차, 2번 승강장은 용산행 급행 전동열차, 4번 승강장은 인천·병점·서동탄·천안·신창행 전동열차, 5번 승강장은 청량리·광운대·의정부·양주·소요산행 전동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며, 6~7번 승강장은 통과선으로 현재 사용되지 않는 승강장이다.

노량진역은 2019년 기준 일평균 이용객이 10만 명을 넘는 주요 역인데, 이것은 서울 서남부 중심지에 위치한 영등포역이나 여의도역보다도 많은 수치로 노량진역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노량진역 주변에는 동작구청, 서울동작경찰서, 노량진수산시장, 노량진1동주민센터, 서울노량진초등학교, 노량진컵밥거리, 사육신역사공원 등이 있으며, 특히 전국 최대의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

[경인선의 의의]

경인선은 한국 철도사의 시작이 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그 자체로 가치가 충분한 역사 문화적 자원이다. 특히 1899년 경인선의 개통에 따라 노량진역은 인천역과 함께 한국 철도의 시종착점 역할을 했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록 이후 한강철교의 개통으로 서울역이 시종착점이 되면서 인천역에 비해서 그 유명세는 약하다 할 수 있으나 여러 면에서 노량진역은 한국 철도의 시발점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인천역이나 서울역에 비해 한국 최초의 철도 시발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 않고 일부 철도 동호회 회원 중심으로만 정보가 공유되고 있어 이에 대한 홍보 등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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