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24
한자 姜基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장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연표보기 - 강기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강기동 의병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11년 2월연표보기 - 강기동 사망
출생지 강기동 출생지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의병장.

[활동 사항]

강기동(姜基東)[1884~1991]은 1884년 한성부 명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기병대에 입대하여 근무하였고 1908년 6월에는 경기도 양주군 고안헌병분견소에서 근무했다. 당시 2명의 의병이 고안헌병소에 수감되자 이들을 탈주시켰고, 권총과 탄환을 탈취하여 이은찬 의병장이 이끄는 창의원수부에 가담하였다. 이은찬의 창의원수부는 경기 동북부 지방 최대의 연합의병부대였다. 이은찬은 당시 원수부십삼도총대장으로 추대되었고 중군이 되었던 경기 동북부지방에서는 최대 규모의 의병진을 꾸렸던 인물이다.

마침 강기동은 일본 헌병대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일본 헌병대의 내부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었고, 일본어에 능통하였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강기동은 우편물을 통한 군자금 확보계획을 세웠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1개월만에 이은찬의 부장이 되었다.

1909년 3월 31일 이은찬이 잡히자 뒤를 이어 의병을 계승하였고 1909년 6월부터 8월까지 보급투쟁과 밀고자 처단 등의 활동을 벌였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일투쟁을 전개하여 양평군과 양주군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일본군의 집중적인 의병토벌이 행해진 10월 포천 연기우의 의진과 연합하여 투쟁하였다. 포천 지역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벌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병탄을 당한 이후 일제의 의병대토벌작전에 의하여 북간도로 피신하려했으나 원산에서 피체되었다. 1911년 2월 경성으로 압송되어, 4월 17일 일제에 의해 총살을 당해 순국하였다.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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