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700
한자 金命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 5월 2일연표보기 - 김명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김명환 고법 전수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김명환 공연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김명환 고법연구소 개설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김명환 ‘판소리감상회’ 고수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78년 2월 2일연표보기 - 김명환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지정
몰년 시기/일시 1989년 4월 5일연표보기 - 김명환 사망
출생지 김명환 출생지 -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무창리
거주|이주지 김명환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258-112 지도보기
성격 국악인
성별
대표 경력 무형문화재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했던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

[개설]

김명환(金命煥)[1913~1989]은 판소리 고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현대 최고의 국악 이론가이다.

[활동 사항]

김명환은 만석꾼 김용현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장판개(張判介)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20세 이후부터 박판석(朴判石)·신찬문(申贊文)·오성삼(吳聖三)·주봉현(朱鳳鉉) 등 명창의 문하에서 고법을 익혔다. 1935년 임방울(林芳蔚)의 「수궁가」 공연 무대에서 처음으로 북을 잡았다. 1936년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에서 박종기(朴鍾基)와 한주환(韓周煥)과의 교류를 통해 판소리와 산조의 장단, 구조, 원리를 터득하였다. 이후 송만갑(宋萬甲), 이동백(李東伯), 김창룡(金昌龍), 정정렬(丁貞烈) 등의 고수를 역임하였다.

1956년 광주에 고법연구소를 개설하였고, 이후 정광수(丁珖秀), 공대일(孔大一), 안채봉(安彩鳳), 한애순(韓愛順) 등의 명창들과 교류하며 고법의 폭을 넓혔다. 1969년부터 함동정월(咸洞庭月)과 동거하면서 최옥산류 가야금산조의 재현에 이바지하였다. 61세부터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에 고수로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김명환은 74세부터 1년간 국립창극단 지도위원을 맡았고, 1978년 2월 2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소리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89년 4월 5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명환은 1979년 10월 18일 제10회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발표공연 때 출연하였고, 1981년 10월 28일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때 판소리고법을 공연하였다. 1982년 5월 7일 김해숙 가야금독주회, 11월 4일 제13회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때 출연하였고, 1983년 9월 1일 예술극장에서 고희기념 판소리고법발표회를 열었다. 1984년 5월 7일 조선일보사 주최 국악대공연에 출연하였고, 1986년 5월 21일과 22일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쁘띠살에서 열린 ‘한국의 날’ 행사에 출연하였다. 1987년 12월 6일 성우향 제자 발표회에 출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4년 KBS국악대상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영화진흥공사 주최 제5회 금관상 영화음악상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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