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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들판, 신평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D010201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신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진

구미시에 신평이라는 동명이 생긴 지는 오래되었다. 구미시 원평동의 원평(元坪)이라는 말이 ‘원래 있었던 들’을 의미하듯이 원평동이 먼저 생겼고, ‘새로 생긴 들판’이라는 뜻의 신평이 나중에 생겼다. 이 마을에는 약 400여년 전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약 150여년 전에는 달성서씨와 동래정씨, 창령조씨 등이 들어왔다고 전한다.

신평동은 1914년 7월 15일 행정구역 개편 때 도덕리와 덕산리, 자죽리, 원평리 일부를 합병하여 1동과 2동으로 나누어졌다. 1973년 3월 10일에는 구미산업단지 조성으로 발생한 당시 선산군 구미면 신부동과 낙계동 이주민 246세대가 이주하면서 신평3동이 설치되었다. 1977년 3월 10일에는 선산군 구미지구 출장소 광평지소로 관할이 편입되었다. 1978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법정동이 개편되어 신평 1, 2, 3동이 1동과 2동으로 편제되었다. 이 때 이주민 마을은 신평2동에 속하게 되었다. 1982년 12월 31일에는 공단동에 속해 있던 장한아파트와 우석아파트가 신평2동으로 편입되어 2007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평2동은 구미산업공단 배후의 전형적인 주거지역으로서 2007년 현재 주민의 60%가 공단근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73년 구미산업공단이 조성되면서 발생한 이주민들의 집단이주단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비자발적 이주단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구미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집단이주단지가 들어선 초기에는 비교적 쾌적한 공단배후 주거지역으로 알려졌다. 금오공과대학교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등이 인접하여 세입자들에게 주택을 임대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되었으나, 최근 금오공과대학이 타 지역으로 이전하고 주거가 노후화되면서 낙후된 주거지역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신평2동을 ‘구미의 달동네’라고 부른다.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전에 자신들이 살던 마을이 지금은 신흥주거지역이 되어 땅값이 치솟는 등 가치가 높아진데 비해, 강제로 이주 당한 뒤 자신들이 지금 사는 마을은 가장 못사는 마을로 전락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신평2동 이주민들은 제2의 고향인 이주민 마을을 두고 다시 이주해야 할 판국에 놓여 있다. 낙후된 주거지를 개발하기 위해 재건축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이주민 1세대들은 재건축을 반대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찬성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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