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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항 공립 소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06
한자 沃溝港公立小學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인가 시기/일시 1899년 - 옥구항 공립 소학교 인가
개교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옥구항 공립 소학교 개교
폐교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옥구항 공립 소학교 폐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9년 9월 9일 - 옥구항 공립 소학교 한성 사범 학교 졸업생 한필수를 교원으로 임용
최초 설립지 옥구항 공립 소학교 - 옥구 향교[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지도보기
성격 공립 소학교
설립자 대한 제국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에 있었던 공립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대한 제국 정부는 1899년(광무 3) 군산항을 개항한 이후 개항에 따른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옥구항에 공립 소학교를 세우도록 하였다.

[변천]

대한 제국 정부가 옥구항에 공립 소학교를 설립하도록 하자 옥구 부윤은 공립 소학교 설립 위치를 옥구 향교의 양사재로 결정하였다. 옥구 향교에 공립 소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지역 유림들이 신식 학교 설립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옥구 향교를 대표하여 재장(齋長)이였던 전준기는 옥구항 공립 소학교의 부교원으로 임용되었다.

옥구항 공립 소학교의 정확한 개교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한 제국 정부가 교원을 임용한 시기는 1899년 9월 9일이었다. 대한 제국 정부는 한성 사범 학교 졸업생 한필수를 교원으로 임용하였다. 이후 1906년(광무 10)까지 옥구항 공립 소학교에 꾸준히 정교원과 부교원을 임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정확한 교육 실태는 알기 어려우나 학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옥구항 공립 소학교는 1906년 9월 1일 일제에 의해서 공립 학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을사 늑약 이후 일제는 식민 정책의 주요 방안으로 대한 제국이 설립한 공립 소학교를 폐쇄하고 공립 보통 학교로 대체해갔다.

옥구항 공립 소학교가 공립 소학교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이후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서 옥구항 공립 소학교공립 군산 보통 학교로 대체된 이후 옥구부에는 근대 교육 기관이 없어지게 되자, 1908년(융희 2) 옥구 지역의 유지들과 옥구 부윤이었던 이무영은 진명 의숙을 신설하여 한국인이 중심이 되어서 교육 활동을 지속해갔다.

[교육 활동]

옥구항 공립 소학교의 교육은 초기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성 사범 학교에서 근대식 교육을 받은 정교원이 임용되었으나 제대로 부임하지 않거나 교원의 교체가 빈번하였다. 하지만 옥구 향교의 재장(齋長)이며 지역의 명망 있는 유학자였던 전준기가 1899년(광무 3) 10월 21일 부교원으로 임용되었으므로 초기에는 주로 유학교육이 중심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1900년(광무 6) 이후 점차적으로 신교육이 실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옥구항 공립 소학교를 졸업생들은 사립 학교의 교사가 되는 등 지역의 교육 활동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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