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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228
한자 韓箕錫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12월 18일연표보기 - 한기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1월 27일 - 한기석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28년 2월 29일 - 한기석 징역 1년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55년 1월 15일연표보기 - 한기석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2년 - 한기석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한기석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한기석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한기석은 1927년 11월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현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에 있던 이엽사 농장의 고율의 소작료와 옥구 농민 조합 서수지부 간부의 검거에 항의하여 임피 역전 주재소와 서수 주재소를 습격하여 구금자를 탈환하는 등 활동했다.

[활동 사항]

1927년 11월 25일 전라북도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 농장이 소작 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장태성김행규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사이토[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저녁 무렵 한기석장태성군산 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 경찰관 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한기석은 이 소식을 듣고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 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체포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한기석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합원 및 농민 8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한기석은 1928년 2월 29일 군산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8)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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