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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극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08
한자 廉克髦
영어음역 Yeom Geukmo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안홍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생년 1153년연표보기
몰년 1217년연표보기
본관 봉성(峰城)
대표관직 호부시랑|안남도호부사

[정의]

고려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봉성(峰城). 할아버지는 태부소경(太府少卿)을 지낸 염덕방(廉德方)이고,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한 염신약(廉信若)이다. 부인은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을 지낸 김황백(金黃白)의 딸이다.

[활동사항]

염극모(廉克髦)[1153~1217]는 문음으로 1174년(명종 4) 관직에 진출하여 삼척현위(三陟縣尉)가 되었다. 그 후 2년 뒤 송림현(松林縣)으로 옮겼다가 임기가 만료되어 성불도감판관(成佛都監判官)에 임명되었고, 1180년(명종 10)에는 강화도 마장별감(馬場別監)이 되었다.

1181년 장생령(掌牲令)에 임명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예빈주부(禮賓注簿)로 옮겼고, 1186년(명종 16) 8월 연해도(沿海道) 감세사(監稅使)가 되었다가 얼마 후 당후관(堂後官)으로서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임명되었다. 이어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가 되었다가, 1197년(신종 즉위년)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에서 도관낭중(都官郞中)에 오른 뒤 신종에게 의복을 하사받았다. 1205년(희종 1) 6월 예빈소경(禮賓少卿)으로서 나주수령으로 나갔다가 2년 뒤 파직되기도 하였다.

1207년(희종 3) 좌사낭중(左司郞中)으로 발탁되었다가 대부소경(大府少卿)으로 승진하였고, 현재의 구로구 일대를 관장하는 안남도호부의 수령이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좌천을 당하다가 1213년(고종 즉위년) 위위소경(衛尉少卿)이 되었고, 1214년(고종 1) 공부시랑(工部侍郞)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겨울 호부시랑(戶部侍郞)으로 옮겼다.

염극모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한 번도 게으른 기색이 없었으며 무릇 베풀고 설치하는 것이 엄격하면서도 간편함을 바탕으로 삼고, 또한 결백하고 청렴하며 부패하지 않음을 으뜸으로 삼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217년(고종 4) 9월 초하루에 병으로 관청에서 별세하였다.

[묘소]

현재 염극모의 묘지명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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