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동 점등 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87
한자 長水洞-
영어공식명칭 Jangsu-dong Jeomdeung Kiln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23-14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정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3년 3월 3일~4월 16일 - 장수동 점등 가마터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 조사
소재지 장수동 점등 가마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산23-14 일대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지도보기
성격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점등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터.

[위치]

광주광역시 하남지구에서 임곡동 방향으로 지방도 제825호선을 따라가면 점등마을이 있는데 장수동 점등 가마터는 이 점등마을의 어등산[338m]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오는 높이 57m 정도의 완만한 언덕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장수동 점등 가마터광주광역시 종합건설본부에서 시행하는 하남일반산업단지 외곽도로 개설공사 구간 내 문화재 긴급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이다. 지표조사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공사 과정에서 백자 퇴적층이 확인되어 2013년 3월 3일부터 4월 16일까지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백자 가마 1기와 퇴적구가 확인되었다.

백자 가마는 산 사면의 경사를 이용해 축조하였으나 요전부와 연소실은 기반토를 뚫어 지하에 둔 지상식 등요이다. 평면 형태는 연도부 쪽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사다리꼴로 전형적인 조선 중·후기 가마의 특징을 보여 준다. 소성실의 평면 형태는 횡장방형이며 총 6칸으로 추정된다. 연소실은 폭 70㎝의 아궁이에서 넓어져 불턱없이 바로 소성실과 연결되는 구조로 사용하면서 보수되어 폭이 좁아졌다. 아궁이 북쪽 벽은 깬 돌을 3단으로 쌓아 축조하였으며, 남쪽 벽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연도(煙道)부는 유실되어 일부만 확인되는데 연기 배출로 7개가 남아 있다.

퇴적구는 가마의 남쪽과 북쪽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되었다. 퇴적구는 여러 번에 걸쳐 도자 실폐품과 가마 부산물, 요도구 등이 폐기되었다. 퇴적구에서 출토된 유물의 층위는 구분되지만, 기형과 번법 등 양식이 같아 유물의 제작 시기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백자 368점, 요도구 88점, 청자 2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발, 접시, 종지 등 일상생활 용기가 대부분이다.

[현황]

장수동 점등 가마터하남산단 외곽도로 건설공사 구간 내 문화재 긴급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공사로 인해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장수동 점등 가마터에서 발굴된 유물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수동 점등 가마터는 대부분 유실되었지만 가마 구조가 인근의 장성 수옥리, 장흥 월송리, 무안 피서리 가마와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가마의 구조나 출토 유물의 특징으로 보아 19세기 말 정도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장수동 점등 가마터를 중심으로 20㎞ 이내에 47개 정도의 조선시대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추후 인근지역 가마터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 장수동 점등 가마터의 조사 성과와 더불어 영산강 유역의 백자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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