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437
이칭/별칭 각력(角力),각저(角觝)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대보름|단오|백중|추석 등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상대를 넘어뜨려 힘과 기술을 겨루던 민속놀이이자 운동 경기.

[개설]

씨름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즐겼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 두 사람이 샅바나 띠를 두르고 서로 잡고 힘과 기술을 걸어 상대를 넘어뜨려 승부를 겨루는 경기 형식의 놀이이다. 농경시대부터 제례행사(祭禮行事)의 하나이며, 자신을 보호하는 무술로도 행하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연원]

씨름에 대한 우리나라 사료로 가장 오래된 것은 만주 통화성(通化省) 옛 고구려의 도읍지인 환도성(丸都城)에서 발견된 각저총현실(角觝塚玄室) 벽화이다. 좌우의 벽에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시대에 이미 씨름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사(高麗史)』에서는 "충혜왕(忠惠王) 원년(1330년) 3월에 중요한 정사를 총신(寵信), 배전(裵佺), 주주(朱柱) 등에게 맡기고 매일 궁중에서 잡무에 종사하는 소동과 씨름하여 상하의 예(禮)가 없었다." 또 "충혜왕 4년(1333년) 11월에 고룡보(高龍普)와 시가(市街)에 행차하여 격구 및 씨름을 보고 포목(布木)을 많이 하사(下賜)하였다."고 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씨름은 어전(御前)에서도 크게 성행하였으며, 이를 보급하는 차원에서 상품을 하사하게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한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8월 16일 호남 지방 풍속에 각저희(角抵戲)를 하는데 주연을 베풀고 즐거이 놀았다. 대개 이것은 농한기에 피로를 푸는 연중행사로 시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각력(角力), 각저(角觝) 등의 이름으로 성행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씨름은 마침내 정월대보름, 단오, 백중, 추석 등의 명절에는 없어서는 안 될 놀이가 되었으며, 농한기에 피로를 푸는 서민들의 민속놀이로 지역공동체적 민속행사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씨름은 선수들이 맬 샅바가 필요하며, 넓은 모래사장이나 모래가 준비된 경기장에서 행하여진다.

[놀이 방법]

씨름은 먼저 상대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꿇어앉아 서로 오른쪽 어깨를 맞대고 오른손으로 상대의 허리 샅바를 잡고 왼손으로는 다리 샅바를 잡는다. 일제강점기에 실시한 조사자료[1936~1941년]에 의하면 함경도 지방에는 오른다리에만 살태를 감아 상대가 왼손만으로 잡는 왼걸이씨름이, 평안도 일부와 황해도 지방에는 오른걸이씨름이 있었고, 강원도·경기도 일부에는 허리띠만을 둘러 양손으로 잡는 띠씨름[허리씨름·통씨름]이 성행하였다. 호남 지방에서는 오른씨름이, 영남 지방에서는 왼씨름이 각각 전해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서울에서 큰 씨름판이 열릴 때면 오른씨름과 왼씨름이 동시 개최되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의 왼씨름으로 통일된 것은 1962년이다. 대한씨름협회는 "각종 대회의 두 가지 방식 개최가 번거롭고 최고 강자를 가릴수 없다."는 것과 당시 "왼씨름을 하는 씨름인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광주광역시·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왼씨름으로 통일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마을 사람끼리 또는 이웃 마을과 친선 경기를 할 때는 오른씨름을 하였다.

준비가 되면 심판의 구령에 따라 동시에 일어서는데 머리·등·허리가 거의 수평을 유지하고 다리를 곧게 뻗어 자세를 잡는다. 경기가 시작되면 서로 힘과 갖가지 기술을 걸어 상대방의 몸이나 손을 땋에 닿게 하면 이긴다. 씨름을 할 때는 수많은 기술들이 사용되며 지방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 한다. 크게 손기술, 다리기술, 들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씨름은 동네씨름과 난장씨름으로 나눌 수 있다. 동네씨름은 동네 청년끼리 어울려 힘자랑을 하던 씨름으로 특별히 경기장은 없고 일하던 틈틈이 쉬는 시간에 근처의 모래밭이나 풀밭에서 즐겼다. 샅바도 없이 허리띠를 엮어서 쓰거나 걷어올린 바짓가랑이를 잡고 하였다. 난장은 정기적인 장날 이외에 특별히 며칠간 더 터놓은 장으로, 이 기간만큼은 씨름 등 각종 오락과 투전, 도박, 야바위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대개 추석 무렵에 난장을 트며 4~5일에서 1주일까지 계속되었다. 난장씨름은 애기씨름, 총각씨름, 상씨름으로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씨름은 명절과 농한기에 남자들이 주로 하였던 놀이이며, 특히 단오절에 성행하였다. 봄부터 쉴사이 없이 농사일에 바쁘다가 농한기를 맞으면 고된 몸과 정신적인 긴장을 풀기 위해 씨름을 즐겼다.

[현황]

동네 청년들이 공터에서 하던 동네씨름과 장터의 난장에서 며칠간 계속되었던 난장씨름은 자취를 감추었고, 축제나 단체의 주체로 씨름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씨름연맹에서 주최하는 프로 씨름대회인 '천하장사씨름대회'를 TV 중계를 통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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