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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37
한자 湖南義兵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성태

[정의]

을미사변부터 남한폭도대토벌작전까지 일제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전라도 의병.

[개설]

전라도는 1896년(고종 33) 장성 의병을 시작으로 1909년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치열한 의병(義兵) 항쟁지였다.

[최대 의병 항쟁지, 호남]

박은식(朴殷植)은 의병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정의로 일어난 민군(民軍)"이라고 정의하면서,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이어 "대체로 각 도의 의병을 말한다면 전라도[호남]가 가장 많은데, 아직까지 그 상세한 것을 모르니 후일에 기대하려 한다."라고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 서술하였다. 이는 훗날 구체적인 수치로 입증되었다. 즉, 1908년 일본 군경과의 교전 횟수와 교전 의병 수에서 전라도는 각각 25%와 24.7%를, 1909년에는 각각 47.2%와 60.1%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1908년 이후 호남이 최대 의병 항쟁지였음을 잘 보여준다.

[호남의병의 활동]

호남 전기 의병은 1896년(고종 33) 장성과 나주에서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났다. 장성 의병은 기우만을 중심으로 기정진의 문인들인 기삼연, 고광순 등이 앞장섰다. 나주 의병은 김창균, 김재환 등 이족(吏族)[향리]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호남 전기 의병은 선유사 신기선이 기우만에게 해산을 종용하자, 기우만은 임금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하여 의병을 해산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사늑약] 체결 이후 호남 의병 항쟁의 도화선은 1906년 6월 최익현의 봉기였다. 최익현은 전라북도 출신으로 전라남도에서 낙안군수 등을 지낸 임병찬과 4월 13일 태인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를 열어 일본이 저지른 죄 16가지를 성토한 후 정읍, 곡성 등지를 거쳐 순창에서 거병하였다. 그러나 최익현 의병부대는 전주와 남원의 진위대(鎭衛隊) 병사들과 순창에서 대치 중 "동족끼리 죽이는 일은 차마 못하겠다."고 하면서 전투를 중단하고 무장을 해제하였다.

호남이 의병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1907년 9월 장성 출신 기삼연이 장성 수록산에서 거병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부터였다. 호남창의회맹소는 고창 문수암 전투를 시작으로 영광 법성포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특히 선봉장 김태원[김준]이 이끈 의병들은 담양 무동촌 전투에서 요시다[吉田]가 이끄는 광주수비대를 격파하였다.

1908년 1월 2일 기삼연이 체포되어 광주천에서 순국하자, 그 뒤를 김태원·김율 형제가 이었고, 김태원·김율 형제가 1908년 4월 또 순국하자 심남일·안규홍·전해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양진여양상기는 부자(父子) 의병장이었고, 김태원·김율, 김원국· 김원범은 형제 의병장이었다. 이들은 전기 의병과는 달리 소규모의 부대를 편성하여 기습·매복을 통해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래서 1907년 이후의 의병 활동을 의병 전쟁이라 부른다.

일제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전라남도 일대 의병 토벌과정을 기록한 『전남폭도사(全南暴徒史)』를 남겼다. 『전남폭도사』에서 일제는 1기[1906년 1월~1907년 12월]에는 최익현·고광순·기삼연, 2기[1908년]에는 김태원·김율, 3기[1909년]에는 전해산·심남일·안규홍 등을 수괴(首魁)로 지목하였다. 일제가 수괴로 지목한 8명의 의병장을 '호남 8대 의병장'이라 부른다.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8대 의병장 중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 기삼연은 전라남도 장성, 고광순은 전라남도 창평, 김태원·김율은 전라남도 나주, 심남일은 전라남도 함평, 안규홍은 전라남도 보성, 전해산은 전라북도 임실 출신이었다.

1909년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의병 투쟁이 현저히 약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 의병 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에 일제는 9월 1일부터 10월 10일까지 보병 2개 연대 2260명과 해군 수뢰정 4척 및 현지의 헌병과 경찰을 총동원하여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 불리는 군사 작전을 실시하였는데, 전라남도 의병이 주 진압 대상이었다.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의 결과 전해산·안규홍·양진여 등 100여 명이 넘는 의병장이 사살되거나 체포되었고, 500여 명의 의병이 순국하는 등 호남의병은 물론 무고한 양민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호남의병은 와해되었을 뿐 아니라 전국적인 의병 활동도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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