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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51
한자 樂庵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391-1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19년 - 낙암정 이건
현 소재지 낙암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391-12 지도보기
성격 누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행주기씨 문중
관리자 행주기씨 문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개설]

1570년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신룡동 신촌마을에 학문의 공간으로서 초당을 세웠는데, 조선 후기에 후손 낙암(樂庵) 기정룡(奇挺龍)[1670~1738]이 기대승을 기리며 초당을 몇 차례 중수하였고 더 이상 중수가 어려워지자 그 자리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그 후 정자가 퇴락하자 1919년에 기정룡의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였다. 이에 기정룡을 기리는 정자로서 처음 이름인 낙암(樂庵)만 빌어 지었다. 정내에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대서현판, 1919년에 식재(植齋) 기재(奇宰)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낙암이건상량문(樂庵移建上樑文)’이 있고, 1934년 석사 기동설의 ‘낙암이건기(樂庵移建記)’ 등 편액들과 함께 8개의 주련이 걸려 있다. 1910년에 후손인 기동두에 의해서 낙암유고(樂庵遺稿)로 5권 1책의 목활자본인 『낙암집(樂庵集)』이 간행되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황룡강변을 따라 장성 쪽 방향으로 호남선 철로가 이어지고 오른편으로 신룡동 신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낙암정은 임곡신룡보건진료소 바로 뒤 신촌마을 입구 들판에 있다. 낙암정 인근에는 월봉서원이 있다.

[변천]

낙암정은 1570년 고봉 기대승이 귀향하여 고마산(顧馬山) 기슭에 초당을 건립한 후, 후손 기정룡이 이를 중수 및 중건하였다. 1919년 퇴락하여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인 신촌마을 입구에 이건하였다.

[형태]

낙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회랑으로 조성되었다. 바닥 전체에 대청마루를 깔았고, 중심은 좌장의 자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1칸 크기에 4개의 기둥과 상부에 보를 연결하고 마루에는 낮은 턱으로 사방을 둘러 공간을 구분함으로써 위계를 갖추어 격을 더하였다. 주초석으로 덤벙주초에 원기둥, 골기와, 팔작의 지붕 곡선이 활달하고 은행나무 1그루와 노송 2그루가 함께 있어 운치를 더한다.

[현황]

낙암정행주기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마을의 모정 역할도 한다.

[의의와 평가]

낙암정은 학문에 대한 집념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선대의 정신을 이어가는 장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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