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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10
한자 金炳淵
영어공식명칭 Kim Byungyeon
이칭/별칭 성심(性深),난고(蘭皐),김삿갓[金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07년연표보기 - 김병연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63년연표보기 - 김병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8년 - 김병연 시비 건립
묘소|단소 노루목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안동(安東)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을 유랑한 문인.

[가계]

김병연(金炳淵)[1807~1863]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이환(金履煥)이며 할아버지는 선천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이다.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이다. 부인은 장수황씨(長水黃氏)이며, 아들은 김학균(金翯均), 김익균(金翼均)이다.

[활동 사항]

김병연은 1807년(순조 7)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11년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에 투항하여 그 죄로 집안이 폐족되자, 김병연은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집이 있는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다. 1816년 어머니 함평이씨김병연 형제를 데리고 영월로 이주하였으며, 김병연은 여기에서 장수황씨와 혼인하여 1828년 장남 김학균을 낳았다. 1829년 모친이 사망하였고, 그 이듬해 형 김병하가 사망하였다. 20세 무렵, 과거시험에서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답으로 급제하였으나, 김익순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방랑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병연은 평생 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김삿갓[金笠]으로 불리었다. 김병연은 30여 년 동안 방랑 생활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둘째 아들 김익균에게 세 번이나 붙잡혔지만 끝내 귀향하지 않았으며, 1863년(철종 14) 57세에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병연은 함경도에서부터 경상도·전라도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가는 곳마다 시를 지어 자연을 노래하기도 하고 세상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김병연의 시를 엮은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전해지며, 김병연은 1841년 전라도 광주에서 무등산장불재를 넘어 화순 적벽에서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無等山高松下在]/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는구나[赤壁江深沙上流]"라는 시를 남겼다.

[묘소]

김병연의 묘소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8년 김병연을 기리는 시비가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세워졌다. 이 외에도 강원도 영월군과 전라남도 화순시 동복면 등에 김병연을 추모하는 ‘김삿갓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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