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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물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765
한자 -物産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선봉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해체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삼원물산 해체
최초 설립지 삼원물산 - 광주광역시 남구
성격 기업체
설립자 김상두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었던 주류 제조업체.

[개설]

삼원물산은 1980년 정도까지 호남권의 대표 소주이던 삼학소주 제조 사업에 참여하다가 폐업한 주류 제조업체이다. 당시 삼학소주 제조 사업에는 목포의 삼학양조, 서울의 삼학산업, 광주의 삼원물산 등 3개 법인이 참여하고 있었다. 1970년대 당시 소주 제조 면허는 '분허가'가 되지 않아 지사나 지점을 두지 못하고 별도의 법인을 설립해야 받을 수 있었다. 삼원물산은 1973년 삼학양조와 삼학산업이 부도가 나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며 1980년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1년 제조 면허가 취소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삼원물산은 삼학양조의 광주지사 성격의 사업체였다.

[변천]

삼원물산의 모태는 삼학양조라고 할 수 있다. 삼학양조는 1947년 목포를 기반으로 설립한 회사로 '대왕표 청주'가 주력 상품이었다. 당시 소주는 증류수여서 생산량이 적었고, 영세 업체들이 난립해 경쟁이 치열하였다. 그러나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 쌀로 술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소주 제조법이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대규모 소주 기업이 나타났다.

이에 삼학양조는 재빨리 서울에다 대량 생산 시설을 구축하여, 시장 진입 3년~4년 만에 업계 1위를 차지하였다. 1970년에는 광주에도 사무소를 설립하고 삼학소주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1971년 11월 24일 검찰이 납세 증지 위조 사건을 발표하며 삼학양조와 서울의 삼학산업이 사법 처리되어 심각한 운영난을 겪다가, 1973년 최종 부도 처리 되었다. 납세 증지 위조와 무관했던 삼원물산은 1979년에 경영난 악화로 인한 세금 체납과 함께 1년 넘게 생산을 못하며 1980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81년 제조 면허 취소 처분을 받게 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삼학소주 및 삼학청주의 제조 및 판매와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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