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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별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61
한자 星山別曲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36년 - 정철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93년 - 정철 사망
배경 지역 서하당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59[지곡리 333]
배경 지역 식영정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59[지곡리 333]
성격 가사
작가 정철

[정의]

정철이 전라도 광주 지역 무등산 일대에 있는 식영정·서하당 주변 풍경을 노래한 가사.

[개설]

「성산별곡(星山別曲)」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 성산[현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의 절경 속에서 묻혀 사는 서하당식영정 주인의 사시사철 산중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강호은일가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원문은 『송강가사(松江歌辭)』, 『송강별집추록유사(松江別集追錄遺詞)』,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등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의 찬미 대상인 주인의 정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벼슬을 하지 않은 채로 평생 성산에서 살았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또한, 「성산별곡」의 창작 시기에 대해서도 몇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서하당 주인인 서하(棲霞) 김성원(金成遠)[1525~1597]의 문집인 『서하당유고』에 실린 「서하연보(棲霞年譜)」의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송강이 관직에 진출하기 전 담양 성산에 머물던 25세[1560] 무렵에 창작하였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또 다른 견해로는 「식영정이십영」과의 상관관계와 작품의 내용상에 보이는 완숙미에 근거한 것인데, 먼저 석천(石泉) 임억령(林億齡)[1496~1568] 사망 직전인 30세로 보는 견해와 동부승지로 진출하였다가 낙향하였던 40세로 보는 견해, 그리고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수년간 성산 부근에서 머물렀던 50세 이후에 창작하였을 것이라는 견해 등이 있다.

[구성]

「성산별곡」은 총 84절[행] 168구로 3·4조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4·4조, 3·3조, 2·4조 혹은 2·3조, 4·3조 등도 더러 보인다. 내용은 크게 서사·본사·결사 등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본사는 또다시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어 모두 6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성산별곡」 제1단은 서사로, 서하당식영정에 머무르면서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는 주인의 풍류와 기상을 표현하면서 식영정의 자연 경관을 신선 세계라 노래하였다. 본사의 첫 번째로 춘사(春詞)에 해당하는 제2단은 성산의 봄 경치와 주인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제3단은 하사(夏詞)로, 녹음으로 푸르른 성산의 여름 경치와 신선과 같은 여름 나기 생활을 보여준다. 제4단은 추사(秋詞)로 성산의 가을 달밤이 주는 몽환적인 밤의 정경을 그려낸다. 제5단은 동사(冬詞)로, 옥처럼 반짝이는 눈꽃 가득한 성산의 선경을 그리고 있다. 결사에 해당하는 제6단은 산중에 벗도 없이 수많은 서책에 있는 성현과 호걸들의 흥망과 지조를 생각하며, 덧없는 세상에 선경을 품고 있는 성산에서의 진선(眞仙)과 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칭송하였다.

[특징]

「성산별곡」의 주요 배경이 되는 성산은 무등산 북서쪽 장원봉의 아래에 자리하고, 장원봉에서 흘러내린 물은 성산 앞의 자미탄과 증암천(甑岩川)을 이루는 형세를 지닌다. 이런 절경 덕분에 성산 일대에는 호남 시단의 근간이 되는 유서 깊은 누정이 많다. 한편, 정철은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인해 16세 무렵 부친을 따라 전라도 담양 창평으로 낙향하였다. 정철은 등과(登科)한 27세까지 약 10여 년간 담양에서 수학하였는데, 이때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1501~1572]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석천 임억령, 서하 김인후, 송천(松川) 양응정(楊應鼎)[1519~1581],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등 호남 학맥을 만들어 나갔던 문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고경명(高敬命)[1533~1592], 김성원 등과도 지기로서 교유하였다.

[의의와 평가]

「성산별곡」은 '식영정사선(息影亭四仙)'이라 불렸던 정철을 비롯한 임억령·김성원·고경명 등이 지은 「식영정이십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식영정이십영」의 주요한 작시 대상이자 소제목인 20개의 풍광이 「성산별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철의 다른 가사 작품에 비해 한어구(漢語句)와 전고(典故)[전례와 고사]가 많아 한시적인 분위기가 짙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성산별곡」은 조선 전기 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공간 중 하나로 성산이 당시의 문인들에게 어떤 공간이었는지를 파악하고, 또한 정철에게 있어 성산이 이상향 중 하나로서 문학적 지향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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