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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원익이 자손들에게 남긴 유훈(遺訓). 「문충공 유훈(文忠公遺訓)」은 조선 선조 때 경기도 광명 출신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60세가 되던 해에 후손에게 전할 말을 글로 남긴 훈계인데, 그의 청백리로서의 검약한 일면을 알 수 있다. 이원익은 1606년(선조 39) 60세 나이에 이르자 자신의 삶을 갈무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선대의 비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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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설계조의 영정. 「설계조 영정」은 순창설씨 옥천부원군 설계조(薛繼祖)[1418~1486]의 영정이다. 설계조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아버지는 창덕궁직장(昌德宮直長)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숙주의 고모이다. 1443년(세종 25)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453년(단종 1)에 용양위호군이 되었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당시 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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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이 형에게 보낸 서간. 「정원용 서간」은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원용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으로 돈녕부도정 정동만(鄭東晩)[1753~1822]과 용인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서울이나 1824년 부친의 묘소[정동만 묘]를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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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회령부사로 재임할 당시 쓴 시문집. 정원용[1783~1873]은 47세 되던 1829년(순조 29) 규장각직제학과 대사간에 제수되었는데, 8월에 북관(北關)에 홍수가 나자 4차례의 망단자(望單子) 끝에 회령부사에 낙점 받았다. 이후 정원용은 북관이 관방(關防)에 중요한 땅인데도 준비가 소홀하다고 여겨 『북략의의(北略擬議)』와 『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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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원용이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 『경산일록(經山日錄)』은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언어학자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과거에 급제한 1802년부터 1873년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약 71년에 걸친 생활상을 기록한 일기이다. 『경산일록』에는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때의 정치 사회상이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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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과 그의 후손들이 기록한 선조의 묘소에 관한 기록. 『금양묘산기(衿陽墓山記)』가 처음 쓰인 것은 1634년(인조 12) 이전으로, 이원익[1547~1634]이 살아생전 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선조 묘의 각각의 위치와 묘전(墓田)의 규모를 정리하였다. 이렇게 이원익이 1차 정리한 뒤 그의 유훈(遺訓)에 따라 1681년(숙종 7)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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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 등이 간행한 동래정씨 파보(派譜). 『동래정씨파보(東萊鄭氏派譜)』는 정원용(鄭元容) 등이 18세 정창연(鄭昌衍)을 파시조(派始祖)로 하여 간행한 동래정씨의 파보(派譜)이다. 정창연[1552~1636]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판서를 거처 1623년(인조 1) 좌의정이 된 인물이다. 5권 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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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규장각 학자들의 시를 모아 엮은 책. 『동성교여집(東省校餘集)』은 직각홍문부응교(直閣弘文副應敎)로 재직 중인 정원용[1783~1873]이 김조순(金祖淳) 등의 규장각 학자들과 함께 362일에 걸쳐 정조의 어제(御製)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의 교정·감수와 간행 작업을 하는 동안 여가를 틈타 수창하며 읊은 시를 편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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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엮은 공문서 모음집. 『북첩록(北牒錄)』은 정원용[1783~1873]이 1840년 3월 4일부터 1841년 4월 21일까지 함경도관찰사로 재직하는 동안 조정과 함경도 감영을 오고 간 공문서를 모아 엮은 첩록(牒錄)이다. 전 5책 분량이었으나 이 가운데 3책이 누락되어 현재는 4책만 남아 있다. 4책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북첩록(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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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함경도 회령 및 북관 지역의 사정에 대해 서술한 책. 정원용[1783~1873]은 1829년(순조 29) 회령부사에 임명되어 1년여 재직했는데, 『북행수록(北行隨錄)』은 회령부사에서 물러난 뒤 저술한 것이다. 정원용은 회령 지역이 관방의 주요 지역임을 깊이 깨닫고 변방에 대한 정책이 소홀함을 몸소 돌아보고 그 대비책을 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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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 가문에서 가계(家系)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서첩. 『삼당가승(三堂家乘)』은 오리(梧里) 이원익[1547년~1634년] 집안의 역대 가계와 통혼 관계 등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서첩이다. 1권 1책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가로 24.0㎝, 세로 34.6㎝이다. 이원익으로부터 이의전(李義傳), 이수약(李守約), 이상현(李象賢), 이존도(李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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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이 『목민심감(牧民心鑑)』에 글을 추가하여 편찬한 책. 『선각(先覺)』은 이원익(李元翼)이 이주군(李朱君)과 함께 명나라 초 주봉길이 쓴 『목민심감(牧民心鑑)』에 글을 추가하여 편찬한 책으로, 『목민심감』의 이본이라 할 수 있다. 이원익[1547~1634]이 생질 이덕기를 위해 써 준 것으로, 목민관이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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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 가문에서 전해 오는 비문을 모아 놓은 탁본첩. 『선조갈문(先祖碣文)』은 1592년부터 1694년에 걸쳐 이원익[1547~1634]의 4세손인 완성군(完成君) 이존도(李存道)[1659~1745] 대에 이원익의 할아버지 수천군 이정은의 묘갈(墓碣)에서부터 삭녕군수 이상현의 묘표에 이르기까지 집안에서 전해 오는 비문들을 모아 완성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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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원용이 오대산 사고(史庫)를 거쳐 고성군에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 『쇄사동정일기(曬史東征日記)』는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1808년 4월 7일 한양에서부터 오대산 사고를 거쳐 고성군에 이르기까지 25일 동안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를 『동정일기』, 『포쇄동정일기』 등이라고도 한다. 『쇄사동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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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철종 5)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자신이 경험한 견문과 의례, 인물 등을 정리한 책. 정원용은 아들 정기세(鄭基世)[1783~1873]가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어 1854년 임지로 떠나자, 철종으로부터 원로대신을 위로하는 뜻에서 ‘수해 지역 순찰’이란 명목으로 휴가를 받았다. 이때 한가한 틈이 나자, 50년 관직 생활의 경험을 더듬어 조정의 전장(典章)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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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순조 19)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지은 시문집. 정원용[1783~1873]은 1819년 12월 6일부터 2년 6개월간 영변부사로 재직했다. 『약산록(藥山錄)』은 영변부사로 부임한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약산(藥山) 동대(東臺)에 오른 뒤 지은 글 등 영변부사로 재직하던 동안의 시와 문장을 모은 책이다. 초고본(草稿本) 상태인 것을 정원용의 후손인 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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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철종 1)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 등이 찬(撰)한 순조와 익종의 능지장속편(陵誌狀續編). 『양릉지장속편(兩陵誌狀續編)』은 순조[1790~1834]와 세자 익종[1809~183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50년에 찬(撰)한 능지장속(陵誌狀續)이다. 양릉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를 합장한 인릉(仁陵)과 익종과 신정왕후 조씨를 합장한 수릉(綏陵)을 의미한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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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중국 연경에 다녀오면서 쓴 시와 일기 모음집. 『연사록(燕槎錄)』은 정원용[1783~1873]이 1831년(순조 31) 10월부터 1832년(순조 32) 3월까지 동지상사(冬至上使)의 신분으로 중국 연경(燕京)에 갔다가 돌아와서 입궐할 때까지 5개월 12일 동안 쓴 시와 일기를 모은 연행록(燕行錄)이다. 후손인 정인보(鄭寅普)[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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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쓴 연행(燕行) 일기. 『연행일록(燕行日錄)』은 정원용[1783~1873]이 1831년(순조 31) 10월 16일 동지겸사은사의 정사(正使)로 한양을 떠났다가 청나라에서 귀국하여 의주에 머물던 1832년 3월 11일까지 약 5개월간의 기행 일기다. 청나라에 들어가기 전의 일은 기록하지 않고, 11월 20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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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경종 즉위년) 광명의 인물인 권유(權愈)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시문을 묶고 발문을 쓴 책. 『열성어제(列聖御製)』는 1631년(인조 9)에 단종과 연산군을 제외한 태조부터 선조까지 조선의 12대 왕의 시문을 편집하여 최초로 간행되었다. 그 후 1679년(숙종7 2)에 이를 보완하여 간행되었으며, 그 뒤로도 철종 대까지 왕이 바뀔 때마다 선왕의 어제를 편집하여 앞 시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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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이인복(李仁復)이 하사받은 열성어필(列聖御筆)을 모아 놓은 책. 『열성어필(列聖御筆)』은 조선 태조 이성계부터 경종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의 글씨를 모아 놓은 첩(帖)이다. 1723년(경종 3) 이인복[1683~1730]이 안동부사로 재직할 때 하사받아 현재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보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는 승정원우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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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조(禮曹)에서 광명 출신의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에 대해 쓴 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번지에 있는 영회원(永懷園)은 광명 지역이 낳은 역사적 인물 민회빈 강씨[1611~1646]의 묘를 말한다. 민회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딸로,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1612년~1645년]의 빈이 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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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정조 9) 광명의 인물인 정술조(鄭述祚)가 동궁의 교육에 필요한 문헌을 발췌하여 엮은 교육서. 『예학집요(睿學輯要)』는 광명시 하안동에 묘소가 있다고 전하는 조선 후기 문신 정술조[1711~?]가 1785년 9월 6일 정조에게 올린 글이다. 당시 4세 된 동궁의 교육 등 조선시대 왕가의 교육을 위해 편찬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으로 1,589책[탈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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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이 남긴 일기. 『오리일기(梧里日記)』는 이원익[1547~1634]이 조선 후기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보존,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 1592년(선조 25)부터 1623년(광해군 15)까지 기록한 일기이다. 본래 임진왜란 이전까지 10여 함(函)이 남아 있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원익의 서녀(庶女) 중 한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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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영조 48) 편찬된 광명 출신의 문신인 강석기(姜碩期)의 유고집. 금천현 서면 노온사리[현 광명시 학온동 일대]에서 태어난 강석기[1580~1643]는 인조반정 후 벼슬이 우승지에 이르렀다. 강석기의 둘째 딸이 바로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다. 강석기가 세상을 떠난 후 민회빈 강씨가 궁중 내의 음모로 사사되자 관직이 추탈되었다가 숙종 때 복관(復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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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작성한 조선 팔도의 살인 사건 보고서 초록. 조선 후기 재상이자 문장가인 정원용[1783~1873]은 1831년(순조 31) 형조판서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7월 13일부터는 홍문관제학을 겸임하였다. 『유경록(惟輕錄)』은 1책본과 5책본이 있다. 이중 1책본은 1831년부터 1832년(순조 32) 10월 16일까지 1년 5개월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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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권유(權愈)가 개찬(改撰)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행적을 기록한 능지문(陵誌文). 『인경왕후지(仁敬王后誌)』는 원래 조선 후기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1661~1680]가 죽은 다음해 익릉(翼陵)에 장사지낼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제진(製進)하였다. 그런데 1689년 송시열이 숙의장씨의 아들[훗날의 경종]을 세자에 책봉해서는 안 된다는 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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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이존도(李存道)가 저술한 역사책. 『전사통감(全史痛鑑)』은 이존도[1659~1745]가 공자의 역사 저술인 『춘추(春秋)』에 근본을 두고, 송나라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自治通鑑綱目)』의 범례에 근거하여 저술한 통감류 역사책이다. 주자학의 군신유의(君臣有義)를 근본으로 후학들에게 인륜과 도덕적 규범을 중시하고 실천케 하기 위해 쓰였다. 본래는 60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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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광명의 문신인 정기세(鄭基世)가 과거에 급제한 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 공사(公私)의 일들을 기록한 일기. 정기세[1814~1884]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의 큰아들로 태어나 1837년(헌종 3) 정시 병과 제1인으로 급제하였다. 『정기세일록(鄭基世日錄)』은 정기세가 과거에 급제한 1831년(순조 31)부터 사망하기 전인 1883년(고종 20)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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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부터 1897년까지 광명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정범조(鄭範朝)가 작성한 일기. 『정범조일록(鄭範朝日錄)』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의 손자 정범조[1833~1897]가 27세인 1859년(철종 10)부터 사망하기 전인 1897년(고종 34)까지 작성한 일기다. 국학자 정인보(鄭寅普)[1893~1950]가 증조할아버지 정원용(鄭元容)[1783~1873]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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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광명 출신의 문신인 정범조(鄭範朝)의 글들을 묶은 문집. 정범조[1833~1897]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의 손자로, 홍문관제학과 예문관제학에 임명된 재원이었다. 문장력 또한 뛰어나 갑신정변과 청일전쟁·갑오경장을 거치면서 청나라와 일본·미국·영국에 보낸 외교 문서들을 작성했는데, 『초고(初稿)』에 이러한 글들이 모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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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중국 문헌을 보면서 참고가 될 만한 기록들을 옮겨 적은 책. 『총진편금(叢珍片金)』은 정원용[1783~1873]이 중국 문헌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옮겨 적은 잡록이다. 국학자 정인보(鄭寅普)[1893~1950]가 증조할아버지 정원용[1783~1873]과 할아버지 정기세(鄭基世)[1814~1884] 등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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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이 참여하여 만든 관리 지침서. 조선시대에는 지방 관리가 지켜야 할 수령칠사(守令七事)와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조목들을 수록한 『칠사문답(七事問答)』이 중요한 예규로 인정받았다. 『칠사문답』은 이원익[1547~1634] 외에 편자와 간행 연도가 미상인 조선시대 관리 지침서이다. 이원익이 쓴 글은, 그의 생질(甥姪)[누이의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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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철종 8)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서문을 쓴 한시 모음집. 조선 후기인 18세기는 신분 질서의 변화가 일어나 중인 계급이 등장하고, 위항 시인들이 대거 출현한 시기이다. 『풍요삼선(風謠三選)』은 직하시사(稷下詩社)의 시동우(詩同友)인 유재건(劉在建)과 최경흠(崔景欽) 등이 1857년에 펴낸 위항 시집이다. 풍요(風謠)는 사대부의 노래인 아(雅)와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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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왕에게 올린 문서를 엮은 책. 『황각장주(黃閣章奏)』는 정원용[1783~1873]이 왕에게 올린 문서로, 1803년(순조 3) 3월부터 1851년(철종 2) 3월까지 의정부와 왕 사이에 오고간 모든 보고와 결정 사항, 대신 간의 협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21권 15책의 필사본이다. 『황각장주』의 많은 부분이 관리 임명과 왕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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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일원에 분포한 조선시대 묘역. 조선시대 민묘로 피장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주변에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의 토기와 자기, 와편 등의 생활 유적이 산포되어 있다. 가학동 고묘군은 두 곳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 지역은 가학동 산223번지와 산224번지 일대로 학온동사무소 맞은편 동쪽 산 정상부에서 등산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00m를 지나 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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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가학동 고인돌군은 광명시 가학동 산102-1번지, 산104번지 일대 벌말마을의 뒤쪽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분포 상황은 서쪽 끝에 탁자식 고인돌이 있고 동쪽으로 5기의 고인돌이 거의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다. 가학동 고인돌군은 낮은 구릉의 정상부에 있고 형태는 탁자식이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타원형과 삼각형 두 종류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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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채석장. 가학동 노리실 고인돌 채석장은 노리실마을에 있는 광명새마을주말농장에서 북동쪽 끝 부분에 있는 소로를 따라 약 100m를 지나면 완만한 산 능선에 있다. 발견된 석재들의 전체적인 형태는 타원형과 장방형의 네모꼴이 많고, 크기는 200×124×32㎝, 180×140×75㎝, 149×77×15㎝ 등 다양한 크기가 발견된다. 가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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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삼국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가학동 유물산포지는 광명 지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유물산포지이다. 2007년 현재까지 33곳에서 전통 시대의 생활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마을, 노리실마을, 공세동마을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가학동 유물산포지에서는 주로 토기류와 자기류, 그리고 기와편들이 발견되었다. 광명시 가학동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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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출토된 가락바퀴. 가학동 출토 가락바퀴는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발견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의식주의 한 단면을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다. 가락바퀴는 청동기시대 원시적인 형태의 실을 잣는 데 쓰는 가락(방추의 막대)에 끼워 그 회전을 돕는 바퀴로,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광명시의 다른 지역 고인돌은 대부분 유물 자체와 주변부가 훼손되어 유물이 수습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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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 주변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절구 역할을 한 도구. 가학동 출토 갈판은 1996~1997년에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가학동 고인돌군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학동 고인돌군 인근의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갈판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에 절구 역할을 한 분말용 도구로, 곡물이나 열매를 부수어 가는 데 사용되었다. 밑에 놓인 갈판은 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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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로 만든 무기. 돌칼[磨製石劍]은 몸체와 자루로 구성되며, 손잡이 대신 슴베[莖]가 있는 경우도 있다. 돌칼의 형태는 칼끝에서 뾰쪽하다가 양날 부분으로 가면서 넓어져 양쪽 날이 평행하게 내려간다. 칼 몸체의 단면은 마름모꼴, 혹은 볼록 렌즈 형태가 일반적이다. 돌칼은 선사시대에 전투나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다. 집터와 고인돌에서 각 1점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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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화살촉. 돌화살촉은 선사시대 사냥 도구인 활의 부속품으로, 돌을 가공하여 화살의 머리에 붙였던 화살촉이다. 석촉(石鏃)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돌화살촉은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하며, 청동기시대에는 주거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된다. 돌칼과 함께 고인돌 부장 용품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재질은 흑요석, 편암, 판암 등 다양한 재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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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늬 없는 토기. 가학동 출토 민무늬토기는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발견된 것으로, 음식물을 보관하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민무늬토기는 대체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바탕으로 하고, 외부 지역으로부터 새로 유입된 제작 수법이 더해져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초기 빗살무늬토기의 잔재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민무늬토기로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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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반달돌칼. 반달돌칼은 청동기시대 전반에 걸쳐 주요한 수확구로서 사용되었고, 철기시대에 이르러서는 철제 반달칼로 대체되었다. 반달돌칼은 형태가 한쪽이 곧고 다른 한쪽이 둥근 반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까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농업 도구 중 몇 안 되는 유물이다. 반달돌칼을 만드는 데는 납작한 편암, 점판암 계통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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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묘제인 가학동 지석묘는 북방식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학들이 놀았다 하여 가학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장수바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1960년대까지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광명사거리에서 안산 방면의 벌말 뒤쪽 산 정상부인 터골산과 북쪽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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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금주(衿州)]. 초명은 강은천(姜殷川). 본래는 고구려의 명장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하는 진주강씨(晉州姜氏)의 분파(分派)로 강감찬(姜邯贊)[948~1031]은 인헌공파(仁憲公派)의 파조(派祖)이다. 강감찬의 5대조로 신라에서 문하시랑을 지낸 여청(餘淸)이 경주로부터 금주에 이주, 호족으로 성장하여 금주가 본관이 되었다. 아버지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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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고조할아버지는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강숙돌(姜叔突)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소격서참봉(昭格署參奉) 강뢰(姜賚)이며, 할아버지는 삼등현령(三登縣令) 강유경(姜惟慶)이고, 아버지는 이조참의 강찬(姜燦)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廣州金氏)이며, 외할아버지는 첨지(僉知) 김은휘(金殷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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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자양(子讓). 증조할아버지는 강양(姜揚)이고, 할아버지는 강비웅(姜非熊)이며, 아버지는 강희(姜曦), 부인은 성홍령(成洪齡)의 딸이다. 외할아버지는 성복동(成福仝)이다. 증손자로 여주목사를 지낸 강찬(姜燦)이 있다. 강숙돌(姜叔突)[?~1515]은 1492년(성종 23)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사관(史官)과 의금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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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덕휘(德輝), 호는 동곽(東郭). 증조할아버지는 강숙돌(姜叔突)이고, 할아버지는 강뢰(姜賚)이며, 아버지는 현령(縣令)을 지낸 강유경(姜惟慶)이다. 강찬(姜燦)[1557~1603]은 1582년(선조 1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사변가주서를 거쳐 1587년(선조 20)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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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에 부설된 경기도 광명 지역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 철도. 경부철도는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총길이 444.5㎞의 복선 철도이다. 이를 경부선이라고도 한다. 1880년 중반부터 경부철도 건설을 위한 지형 탐사를 시작한 일제는 1896년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고종은 1896년 두 차례나 경부철도부설 청원서를 거부했지만, 힘에 밀려 1898년 9월 8일 정부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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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의복·의대·장식품.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한 뒤 순조, 헌종, 철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72년간 조정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의정부와 중추원에서만 33년간 재직하였으며, 1862년(철종 13)에 궤장(机杖)을 하사받았다. 1874년(고종 11)에 문충이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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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충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궤장 하사 기로연에서 지은 시를 모은 시첩의 사본. 조선 시대에는 나이 70세 이상, 정 2품 이상의 원로 관료에게 왕이 안석(案席)과 궤장을 내려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1623년(인조 1) 3월, 인조(仁祖)는 정계에서 떠나 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을 영의정에 임명하고, 그 해 8월 궤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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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역사학에서 고대는 선사시대 이후부터 중세 이전까지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 존재하였던 사회 구성체와 정치 조직체를 고대 사회와 고대 국가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영역 국가를 형성하고, 강력한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중앙 집권적인 관료제(官僚制)와 율령(律令)을 실시하였으며, 왕위의 부자 상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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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통일신라시대 한주에 속했던 지금의 경기도 광명지역은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친 뒤 고려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여러 차례 행정구역의 변천을 거쳤다. 고려시대의 광명 지역은 금주(衿州) 지역에 소속되었으며, 10도(道) 중에서는 관내도(關內道)에 편성되었다. 금주는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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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고대 무덤. 광명시의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고대 무덤은 청동기시대 고인돌 외에 삼국시대 무덤인 고분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광명 지역이 한강 이남의 주요 교통로이며 현재의 안양천에 인접한 지역임을 감안하면 차후 유적의 발견성은 높다고 추정된다. 광명 지역의 고분은 고인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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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거의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럽,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구주 지방, 중국 동해안 지역과 동북 지방, 그리고 한반도 등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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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무열왕(武烈王)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전제 왕권(專制王權)을 형성하여 진골(眞骨)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경덕왕(景德王) 때부터 진골 귀족들의 세력이 다시 강화되자 경덕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화(漢化) 정책을 실시하여, 757년(경덕왕 16)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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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광명시 철산3동 광덕산 근린공원에 설치된 체육 시설물 주변에서 고려시대 이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광덕산 유물산포지에서는 토기와 자기류, 그리고 기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광덕산 유물산포지에서 발견된 토기류는 옹기의 밑 부분인데, 남아 있는 조각으로 보아 몸통은 굽에서 급하게 올라가며, 몸통과 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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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충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계첩. ‘금오(金吾)’는 왕명(王命)을 받아 범죄 조사와 범법자 처리를 담당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의 별칭(別稱)이다. 「금오계첩」은 1714년(숙종 40) 11월 의금부 도사에 임명된 이인복(李仁復)[1683~1730] 등 10인이 면신례(免新禮)의 준비물로 제작한 계첩(契帖)이다. 충현 박물관 일대는 청백리(淸白吏) 재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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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지은『징비록』의 한글 번역본. 『광명 번역 징비록』의 저본인 『징비록』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책으로 1647년 간행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내외 정세를 소개하는 등 체계적 서술로 인해 관련 사료 중 연구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을 위해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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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소현세자의 빈 강씨의 묘소. 광명 영회원(永懷園)은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제1왕자인 소현세자의 빈 강씨의 묘소이다. 강씨의 본관은 금천이고, 시호는 민회빈(愍懷嬪)이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와 고령신씨(高靈申氏) 사이에서 5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9월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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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간행된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의 문집. 『오리집(梧里集)』을 책으로 간행하기 처음으로 정리를 시작한 사람은 이원익[1547~1634]의 친손인 이수강과 조카사위 이희년이었다. 달성도호부사였던 이수강은 이희년과 함께 소답, 일기, 연보, 잡저 10권에 『궤장연창수시』 1권을 덧붙인 뒤 이를 간행하기 위해 공인과 판목을 모으는 등 문집 간행을 구체적으로 진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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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에서 시행된 것으로 추측되는 은광 채굴. 조선 전기의 광산 개발은 중국에 대한 사대 조공품 및 국용(国用) 조달과 관련되어 진행되었고, 광산의 개발은 국가가 주도하였다. 그런데 지방의 수령이나 지역민들은 부담이 큰 채굴 작업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조선 초기 광산의 개발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무역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은을 무역 대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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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李元翼)의 글씨를 목판에서 인출한 것. 「광명 이원익 유묵목판 인출본」은 모두 8점으로, 이원익이 정몽주의 시를 옮겨 쓴 것을 후손이 목판에 판각하였고, 이를 인출한 것이다. 이원익의 친필 시(詩)를 언제 누가 목판본으로 간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비로서의 청렴한 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친필본과 대조하여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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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초상.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조선시대 문신인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영정 중의 하나이다. 2009년 6월 24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광명 이원익 초상화」의 주인공인 이원익의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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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정몽주의 시를 직접 써서 자녀에게 준 문서. 「광명 이원익 친필 유묵」은 모두 13점이며, 대부분 손자, 손녀에게 남긴 것이다. 교육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원익의 자손들에 대한 사랑과 선비로서의 청렴한 생활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7세기 전반 작성되었으며, 이원익 말년의 필체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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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존도가 작성한 유서. 「광명 이존도 유서」는 이원익의 4세손이며 대사간을 역임한 이존도(李存道)[1659-1745]가 1734년(영조 100, 1735년(영조 11), 1737년(영조 13) 4년간 3차례에 걸쳐 작성한 유서(遺書)이다. 일반적으로 종가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에는 분재기(分財記) 같은 자료가 중요한 자료 구실을 하지만, 이원익 종가에는 그러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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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광명동 삼리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100미터 떨어진 산 능선 아래쪽 밭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자기편, 기와편 들이 확인되었다. 유물들이 산포된 면적은 대략 661㎡이며,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조선시대 생활 유적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광명동 유물산포지에서 수습된 토기류는 회백색을 띠는 연질토기 입술 조각 및 겉면과 안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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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주산은 높이 237m의 구름산이다. 광명시의 중앙에 자리 잡고 광명시를 동서로 가르는 구름산은 아왕봉 또는 운봉(雲峰)으로도 불렸다. 바로 이 구름산의 서쪽에서부터 동쪽까지의 줄기를 타고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이 터를 잡고 뜻을 펼쳤는데, 그들이 바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과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1611~1646],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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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병조참의 구춘보(丘春甫)이다. 아들로 사헌부대사헌 구치곤(丘致崑)과 조카 구종직(丘從直)이 있다. 구차숭(丘次崇)은 1442년(세종 24) 영해부사(寧海府使)를 거쳐 1451년(문종 1) 예빈시판사(禮賓寺判事)를 역임하였고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옛 시흥군 서면 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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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구차숭의 묘소. 구차숭(丘次崇)은 본관이 평해(平海)이며, 병조참의를 지낸 구춘보(丘春甫)의 아들이다. 대사헌 구치곤(丘治崑)의 아버지이며 구종직(丘從直)의 당숙이다. 1442년(세종 24) 영해부사(寧海府使)를 거쳐 1451년(문종 1) 예빈시판사(禮賓寺判事)를 역임하고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아들 대사헌 구치곤에 의해 병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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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증조할아버지는 구천우(丘天雨)이고, 할아버지는 구춘보(丘春甫)이며, 아버지는 구차숭(丘次崇)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윤(金贇)이다. 부인은 조후지(趙厚之)의 딸이다. 동생으로 구치강(丘致崗)을 두었다. 구치곤(丘致崑)은 1464년(세조 10) 진사로서 식년문과(式年文科) 정과(丁科)에 급제한 뒤 1479년(성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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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구치곤의 묘소. 구치곤(丘致崑)은 본관이 평해(平海)이며, 증조부는 구천우(丘天雨), 조부는 병조참의를 지낸 구춘보(丘春甫), 아버지는 영해부사(寧海府使)와 예빈시판사(禮賓寺判事)를 역임한 구차숭(丘次崇)이다. 외조부는 김윤(金贇), 장인은 조후지(趙厚之)이다. 1464년(세조 10) 진사로서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고, 14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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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퇴보(退甫), 호는 하계(霞溪). 고조할아버지는 승지 권형(權詗)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권약(權若)이며, 할아버지는 목사 권훈(權勛), 아버지는 권단(權偳)이다. 외할아버지는 정백형(鄭百亨)이다. 부인은 이행원(李行源)의 딸이다. 권유(權愈)[1633~1704]는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병과 1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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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오(仲悟). 증조할아버지는 권치(權錙)이고, 할아버지는 권식(權湜)이며, 아버지는 증좌승지 권침(權琛)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석보(金碩輔)이다. 부인은 변훈남(卞勳男)의 딸이다. 권형(權詗)[1541~1605]은 1568년(선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적을 두고 있던 중 처음으로 목청전참봉(穆淸殿參奉)에 제수되었고, 다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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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권형의 묘소. 권형(權詗)[1541~1605]은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중오(中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치(權錙), 할아버지는 권식(權湜),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권침(權琛)이다. 외조부는 김석보(金碩輔)이다. 부인은 변훈남(卞勳男)의 딸이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 목청전참봉(穆淸殿參奉)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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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는 개국 이후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자 지방 통치를 개편하였다. 지방 통치 개편은 도제 시행과 관찰사 파견, 수령 파견 지역 확대, 면리제 시행 등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예전 비효율적인 지방 행정구역 통합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금천현(衿川縣)을 과천현(果川縣)과 통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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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선 왕조를 건국한 주도 세력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앙 집권 국가의 건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한 속현(屬縣)이 많아 지방 분권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였고 이 때문에 중앙의 권력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은 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은 지방 통치 행정에 대한 대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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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구려시대에는 잉벌노현(仍伐奴縣)이었고, 신라의 영토가 된 후 경덕왕(景德王)이 곡양현(穀壤縣)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관할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금주(衿州)로 고쳤다. 금주는 달리 금주(黔州)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원래 금천강씨(衿川姜氏) 시조(始祖)인 강궁진(姜弓珍)의 근거지였다. 강궁진은 고려 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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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금천(衿川)에서 ‘금(衿)’은 율진군(栗津郡)의 속현이었던 곡양(穀壤)을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금천으로 기록되어 있음]로 고친 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 ‘주(州)’라는 명칭이 읍격에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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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시대 금천강씨 문중의 묘역. 금천강씨는 고려 창건 개국공신으로 삼한벽상공신이 된 강궁진(姜弓珍)이 태조왕건으로부터 본관을 금주로 하사받은 사성(賜姓)이다. 이후 금주가 금천(衿川)으로 지명이 변경되어 금천강씨가 되었다. 강궁진의 고조인 강여청(姜餘淸)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강궁진을 1세로 이어진다. 강궁진은 고려 명장 강감찬(姜邯贊)[9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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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시조는 신라의 왕족인 김흥광(金興光)이다. 고려 초기부터 명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광산김씨는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代)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으로 분파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급제자가 배출되었으며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이 나왔다. 김흥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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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대덕의 묘에서 출토된 명기류. 명기(明器)는 죽은 사람의 내세 생활을 위해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기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15세기 후반 명기에 대한 양식이 정립되었고, 16~19세기에 걸쳐 소형 사발·접시·병 등이 주로 부장되었다. 묘지석과 함께 부장되는 명기들은 순백자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으나 청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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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대성의 묘소.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는 광산김씨 돈녕공파와 소봉공파 후손 50여 세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덕안리, 궁촌, 새터말 등이 새로 형성되면서 9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다. 1950~1960년대에는 새마을운동, 4H 활동을 통하여 지붕 개량, 부엌 개선,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동 상점,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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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김씨 25세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을 지낸 김종(金綜)이고, 어머니는 이양(李樑)의 딸이다. 김원록(金元祿)[1546~1627]은 1588년(선조 21)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형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1594년(선조 27)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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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시조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를 지내고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지고, 명종 때에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응수(金應壽)[1567~?]는 사복시 잡직인 마의(馬醫)에서 조관(朝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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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상경(商卿), 호는 가정(柯亭). 익찬공파 26세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약평(金若枰)이다. 조선조의 명장으로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金宗瑞)[1390~1453]의 후손이다. 부인은 파평윤씨로 현령을 지낸 윤숭선(尹崇先)의 딸이다. 김희열(金希說)[1497~1551]은 1519년(중종 1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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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 남평문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발급받은 교지. 남평문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교지는 모두 6종으로, 문채국(文采國)·문덕표(文德杓)·문채룡(文采龍)·문달현(文達鉉)·문진휴(文鎭休)와 관련된 것과 김기홍(金基弘)의 것이 있다. 이중 김기홍과 관련된 교지가 남평문씨 문중에서 전해 오는 이유는 자세하게 전하지 않는다. 먼저 1844년(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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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5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광명시 광명사거리를 지나 오류동 방향으로 건너가는 천왕교 남쪽에 너부대 유물산포지가 있다. 이곳에는 너부대근린공원이 원형에 가까운 남북으로 약간 긴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부를 중심으로 각종 체력 단련 시설이 있으며 구릉의 주변부에는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다. 너부대 유물산포지의 유물은 구릉의 정상부와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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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노온사동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노온사동 34번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서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노온사동은 광명시에서 가학동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의 토기류와 자기류, 기와류 등의 유물들이 확인된 지역이다.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가 수습된 지역은 새터말마을 입구에서 왼쪽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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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도덕산(道德山)에 있는 백제시대의 보루(堡壘). 도덕산 보루군은 도덕산성으로 알려진 유적이다. 1977년의 조사에 따르면 둘레 700m 정도의 토석축(土石築)으로, 삼국시대 산성지(山城址)라 보고되었다. 그러나 1986년의 조사에서는 도덕산[198m] 성지(城址)로 삼국시대 후기의 백제 유적과 함께 성지나 봉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2003년의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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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농민 항쟁의 한 원인이 된 일본과 러시아간의 전쟁. 러일전쟁은 1904년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싸움으로서, 2차 시흥농민봉기의 한 원인이 된 전쟁이다. 이를 노일전쟁, 일로전쟁, 일아전쟁 등이라고도 한다.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의 준비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를 위협하여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고 극히 낮은 임금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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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해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정치연맹체로, 삼한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마한(馬韓)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에서부터 작은 것은 수천 가에 이르렀다고 나와 있다. 마한 54개 소국은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라 하고, 작은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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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관찰사가 시흥농민봉기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에 파견한 관리. 명사관은 조선시대 당시 지방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도의 감사가 사건 내용의 진상 조사를 위하여 파견하는 관리이다.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농촌은 토지가 소수 부호에게 독점되고, 대다수의 농민이 토지에서 배제된 상황이었다. 즉 많은 수의 농민이 소작농의 처지에 있었고, 농업 이외의 다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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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관개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땅의 면적. 몽리면적은 보, 저수지 등의 수리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토지의 크기를 말한다. 관리의 탐학이 주로 이 땅을 놓고 벌어졌는데, 이것이 제1차 시흥농민봉기의 원인이 되었다. 성우경(成禹慶) 등 현재의 광명 지역 출신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사건으로, 전임 군수 문봉오의 가혹한 수탈과 교활한 아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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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무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가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보호 대상으로 하는 문화재를 말한다. 연극·무용·음악·공예 기술 등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가치가 큰 것을 대상으로 하는데, 대상이 형체가 없기 때문에 실제는 그 기능을 갖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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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소재하는 유·무형의 문화재. 광명시에 소재하는 국가지정 문화재는 광명 영회원(永懷園)[애기능] 등 2점이 있으며, 도 지정문화재는 오리 이원익 영우 등 18점이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 시 지정문화재로 철산동 지석묘 등 6점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는 조선 16대 인조의 원자이며 비운의 세자로 알려진 소현세자의 빈 민회빈 강씨의 묘인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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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공세골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유씨 문중의 묘역. 문화유씨 묘역에는 유성구(柳聖龜) 등이 안장되어 있다. 유성구(柳聖龜)는 자가 원명(元明)이고 1620년에 출생하여 38세인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3등 26위에 입격하였다. 유경익(柳敬益)[1639~?]은 유성구의 아들로 자가 여숙(汝肅)이며, 35세인 1673년(현종 14) 진사에 2등 19위로 입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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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으로 소현세자의 빈. 본관은 금천(衿川). 고려 때 귀주 대첩의 영웅이며 벽상공신을 지낸 강궁진의 아들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이므로 금천강씨로 부른다. 아버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40년(인조 18)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는 1611년 5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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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김녕김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김응수(金應壽)와 그의 후손들이 받은 교지 등의 고문서. 분성군(盆城君) 김응수[1567~?]는 임진왜란 당시 마의(馬醫)로 선조를 호종한 인물로 사복시이마(司僕寺理馬)의 신분에서 동반(東班)의 반열에 오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604년(선조 37)에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도 선조의 신임으로 호성공신 3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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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의 봉기에서 사발을 엎어서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이름을 돌려가며 적은 통문. 통문(通文)이란 어떤 일이 있을 때 사람을 모으기 위하여 알리는 고지문(告知文)을 말한다. 특히 19세기 후반 농민항쟁이 거세지면서 관에 항의하고자 각 마을마다 통문을 돌려 사람을 모았으며, 서원과 향교에서도 사람을 불러 모을 때 이를 돌렸다. 사발통문이란 호소문이나 격문 등을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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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石器時代)는 석기의 제작 방법에 따라서 뗀석기[일명 타제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와 간석기[일명 마제석기]를 사용하던 신석기시대로 구분된다. 그리고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에는 세석기(細石器)를 사용하였던 중석기시대가 존재하였다. 인류는 농경(農耕)을 시작하면서 구석기시대의 채집 경제에서 신석기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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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통칭하는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의 선사시대(先史時代)는 구석기시대·중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다만 중석기시대의 경우 그 존재 여부에 대해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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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경모재에 모신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홍서(弘瑞),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창덕궁(昌德宮) 직장(直長)을 지낸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숙주(申叔舟)의 고모이다. 설계조(薛繼祖)[1418~1486]는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茅亭里)에서 태어났다. 25세인 1443년(세종 25) 무과에 급제하였다. 1453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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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곽은 기능에 따라 도성(都城)과 장성(長城), 읍성(邑城), 산성(山城) 등 다양하게 구분을 한다. 도성은 왕궁의 도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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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량(仲亮), 호는 서은(西隱). 증조할아버지는 성복영(成復榮)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성열(成烈)이며, 아버지는 홍문관교리를 지낸 성우규(成禹奎)이다. 성종영(成鍾永)[1827~1890]은 1865년(고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1880년(고종 17) 상서원직장을 거쳐 1886년(고종 23) 예안현감과 연산현감, 18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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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은 성태경(成泰慶), 자는 치장(稚長), 호는 서암(書岩). 증조할아버지는 성수(成樹)이며, 할아버지는 성진익(成鎭翼)이고, 아버지는 성용연(成龍淵)이다. 외할아버지는 홍윤철(洪潤哲)이다. 성하경(成夏慶)[1823~1899]은 1855년(철종 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때는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였다. 사헌부지평을 거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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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광명시 소하2동 341-1번지, 342번지 일대와 소하2동 367~370번지, 377-1~3번지 일대에 걸쳐 소하동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있다. 광명시 소하2동에서 조선시대 토기, 자기, 기와 조각들이 확인되었다. 소하동 유물산포지는 설월리마을 서쪽에 위치한 금강정사 앞에 있는 밭이다. 이곳에서는 회청색과 회백석을 띠는 연질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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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벌어진 1, 2차 시흥농민봉기의 수사를 맡았던 기관. 순교청은 1894년 갑오개혁기에 각 지방 관아에 설치된 기관으로 범죄의 단속과 수사 등 지금의 경찰 업무를 수행하였다. 순교청에는 경찰관에 해당하는 하급 경리(警吏)인 순교가 소속되어 있었다. 순교청은 1898년 8월 23일에 일어난 1차 시흥농민봉기와 1904년 9월 14일에 일어난 2차 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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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광명시의 역사. 2010년 현재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조사, 보고된 적이 없다. 그러나 목감천 등 하천 주변에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광명시의 지형적 특성으로 미루어 향후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광명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철산동 고인묘와 가학동 지석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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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조선시대 묘역.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묘이며 주변의 광명 차량 기지 주위와 옥길리주유소 부근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자기편 및 도기편, 기와편이 산포하고 있다. 옥길동 고묘군은 옥길동 두길리마을에 있는 광명YWCA 건너편의 동서 방향으로 뻗은 완만한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물 산포 지역은 고묘의 동쪽에 위치한 지하철 7호선 광명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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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옥길동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옥길동 98-2번지와 옥길동 18-2번지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광명시 옥길동 두길리마을과 식골마을 일대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자기, 그리고 기와류 등이 수습되었다. 토기류는 경질과 연질의 토기가 골고루 섞여 있는 몸통 조각들이 수습되었다. 무늬는 주로 격자문이 새겨져 있으며 안쪽 면에서는 손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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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주도한, 벼슬하지 않은 유생(儒生). 유학(幼學)은 조선시대에 벼슬을 하지 않은 양반의 자손이나 사족(士族)의 신분을 표시하는 말이다. 이들 유학은 유교를 신봉하고 유교 도덕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생업에 종사하는 일없이 책만 읽는 독서인이자 한문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지식인 계급이었다. 또한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실시하는 석전(釋奠)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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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향리들이 모여 고을의 사무를 처리하던 통치 기구. 읍사(邑司)는 지방 향리 조직의 기반이 되는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서 제1차 시흥농민봉기 때 광명 지역에 있던 농민의 집합 장소로 사용된 관청이다. 읍사는 군현 단위로 설치된 곳들의 총칭이며, 실제로는 해당 군현의 격에 따라 주사(州司)·부사(府司)·군사(郡司)·현사(縣司)·진사(鎭司) 등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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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익(子益), 호는 반청와(蟠靑窩). 명재상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7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와 지방 현감을 지낸 이존도(李存道)이고, 할아버지는 병조참판을 지낸 이인복(李仁復)이며, 생부는 교관(敎官)을 지낸 이언충(李彦忠)이다. 온양군수인 이언수(李彦秀)에게 입양되었다. 이겸환(李謙煥)[1739~1791]은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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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 증조할아버지는 상의원정(尙衣院正)과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이달선(李達善)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박사를 지낸 이공인(李公仁)이며, 아버지는 승정원도승지와 이조참판·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이중호(李仲虎)이다.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이발(李潑)[1544~1589]은 1573년(선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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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발의 묘. 이발(李潑)[1544~1589]은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모반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82세의 노모와 8세 아들도 형벌 끝에 죽음을 당하였는데, 형 이급(李汲), 아우 이길(李洁)도 죽음을 당하였다. 당시 노모는 형벌이 너무 지나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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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이(善而). 아버지는 이원익(李元翼)의 형인 통진현감과 흡곡현감을 지낸 이원보(李元輔)이다. 이성전(李性傳)[1551~1585]은 1570년(선조 3)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 3등, 1577년(선조 10) 알성시(謁聖試)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과 병조좌랑을 지냈다. 묘소는 광명시 일직동에 있다. 석물로는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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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성(而省)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李元翼)이며, 아버지는 양근군수를 지낸 이의전(李義傳)이다. 이수약(李守約)[1590~1668]은 1623년(인조 1) 문음으로 선공감역이 되었으나 이듬해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28년(인조 6) 연풍현감과 1633년(인조 11) 사헌부감찰을 거쳐 1639년(인조 17) 형조좌랑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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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화(子和). 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원보(李元輔)로, 이원익(李元翼)의 형이다. 생부는 이경부(李敬傅)이나 예조좌랑을 지낸 이성전(李性傳)에게 입양되었다. 이수함(李守諴)[1592~1656]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한 후 1645년(인조23) 별시 을과에 4위로 합격하였다. 용담현령(龍潭縣令)과 양근군수(楊根郡守)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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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명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입부(立夫). 태종의 첫 번째 왕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귀달(李貴達)이며, 아버지는 이진(李眞)이다. 어머니는 복주김씨(福州金氏)로 외할아버지는 진사(進士) 김구수(金龜壽)이다. 부인은 경상도병마우후(慶尙道兵馬虞候) 윤천수(尹天壽)의 딸이다. 이순신(李純信)[1554~1611]은 어릴 때부터 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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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순신의 묘소.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무신 이순신(李純信)[1554~1611] 장군의 묘소이다. 이순신은 본관이 전주, 자는 입부(立夫)이다. 양녕대군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귀달(李貴達)이며, 아버지 이진(李眞)과 어머니 복주김씨 사이에서 금천(衿川)[지금의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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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이신(李愼)[1570~1634]은 임진왜란 때 영유 지방에서 시행된 무과 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하였다. 평안도 안주와 강계판관 등을 비롯하여 주로 평안도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 그리고 함경북도병마절도사와 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평안병사 이괄(李适)이 인조반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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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년(大年). 증조할아버지는 태종의 아들인 익령군(益寧君)이고, 할아버지는 수천군(秀泉君) 이정은(李貞恩)이며, 아버지는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이다. 어머니는 국자생원(國子生員) 조경(趙璟)의 딸이다. 부인 우씨(禹氏)와 혼인하였으나 자식이 없었고, 뒤에 감찰(監察) 정치(鄭錙)의 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낳았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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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억재의 묘소. 이억재[1503~1585]는 본관이 전주, 자는 대년(大年)이다. 할아버지는 태종의 손자 수천군(秀泉君) 이정은(李貞恩)이며, 아버지는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이다. 어머니는 국자생원(國子生員) 조경(趙璟)의 딸이다. 부인 우씨와 혼인하였으나 자식이 없었고, 뒤에 감찰 정치(鄭錙)의 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낳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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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익(伯益). 할아버지는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이고, 아버지는 정의대부(正義大夫)로 승진하고 함천군(咸川君)에 봉해진 이억재(李億載)이다. 동생이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이다. 이원보(李元輔)[1530~1589]는 1570년(선조 3) 생원에 합격한 후 1577년(선조 10) 처음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에 제수된 뒤 15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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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원보의 묘소. 이원보(李元輔)[1530~1589]는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백익(伯益)이다. 태종의 손자 수천군(秀泉君) 이정은의 증손자이며, 할아버지는 청기군 이표(李彪)이다. 할머니는 국자생원 조경의 딸이다. 어머니는 감찰 정치(鄭錙)의 딸이며, 부인은 별제 최업(崔嶪)의 딸로, 6남 2녀를 낳았다. 동생은 영의정을 지낸 문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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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태종의 아들인 익녕군 이치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함천군 이억재(李億載)이다. 이원익의 가계는 익녕군 이치-수천군 이정은-청기군 이표-함천군 이억재-이원익으로 이어진다.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1573년(선조 6)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며, 그해 2월 성절사 권덕여(權德輿)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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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초상. 「이원익 초상」은 조선 시대 문신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초상 중 하나로, 2005년 7월 7일에 보물 제1435호로 지정되었다. 「이원익 초상」의 주인공인 이원익의 자(字)는 공려(公勵), 호(號)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며,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이며, 이억재의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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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자손들에게 당부할 내용을 적은 글.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1599년(선조 32) 9월 15일에 이원익(李元翼)이 동호초당(東湖草堂)에 있으면서 자필로 아들 이의전(李義傳), 손자 이수약(李守約) 및 후대(後代) 자손(子孫)들에게 당부한 글이다. 풍수설에 구애 받지 말고 선산에 장사 지낼 것과 가족 간에 재물을 갖고 다투지 말 것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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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원익의 묘소 및 신도비.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 호는 오리, 시호는 문충이다. 한성부 유동(楡洞) 천달방(泉達坊)에서 태어났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礻+多)의 4세손이며 수천군 이정은(李貞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표(李彪)이고, 아버지는 이억재(李億載)이며, 어머니는 동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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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이원익의 영정. 조선시대의 문신 오리 이원익[1547~1634]의 영정 중 하나이다. 이원익의 자(字)는 공려(公勵), 호(號)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며,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礻+多)의 현손(玄孫)이며 이억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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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아들과 손자들에게 남긴 유서. 이원익이 84세때인 1630년(인조 8) 11월 21일에 아들 이의전(李義傳), 손자 이수약(李守約)·이수기(李守紀)·이수강(李守綱) 그리고 서자(庶子) 이효전(李孝傳)·이제전(李悌傳)에게 남긴 유서로서 장례 및 제례에 관한 유언을 자필로 작성한 것이다. 이원익은 선조의 가훈을 받들어 충효를 마음에 두고 인례(仁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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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공신 이원익(李元翼)의 배향 교서. 「이원익 인조묘정 배향교서(李元翼 仁祖廟廷 配享敎書)」는 1651년(효종 2)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을 인조의 묘정에 배향한다는 내용의 효종이 내린 교서다. 인조와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뒤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발탁함으로써 흉흉한 인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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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의중(宜仲). 할아버지는 함천군(咸川君) 이억재(李億載)이고, 아버지는 상국문충공(相國文忠公) 이원익(李元翼)이다. 어머니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이의전(李義傳)[1568~1647]은 1599년(선조 32) 31세 때 비로소 벼슬에 나가 4현(四縣), 5군(五郡), 2부(二府)의 목민관으로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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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초(來初), 호는 춘절재(春節齋). 명재상 이원익(李元翼)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주목사를 지낸 이증현(李曾賢)이고,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이존도(李存道)이다. 어머니는 권석(權碩)의 딸이다. 이인복(李仁復)[1683~1730]은 1705년(숙종 31)에 진사가 된 뒤 문음으로 입사(入仕)하여 1708년 하양현감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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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중(正中), 호는 월호(月湖)·설창(雪窓)·남곡(嵐谷). 아버지는 태종의 아들인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示+多)이다. 이정은(李貞恩)은 일찍이 수천부정(秀川副正)에 봉해졌다가 종친부도정(宗親府都正)을 지낸 뒤 수천군(秀泉君)에 봉해졌다. 인품이 독실하고 돈후하여 스스로 겸손하며, 식견과 도량이 있고, 학문의 이치를 터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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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망와(忘窩). 이원익의 4세손으로 친부는 이상현(李象賢)이고, 성주목사를 지낸 이증현(李曾賢)의 양자가 되었다. 아들로 이인복(李仁復)이 있다. 이존도(李存道)[1659~1745]는 가문의 일을 많이 정비하여 의릉참봉 시절 묘지(墓誌)를 참고하여 정조의 서녀이며 순조의 누이인 숙선옹주(淑善翁主)의 묘를 찾고 옛 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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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사(孝思). 증조할아버지는 청백리 이원익(李元翼)이다. 부인은 상산김씨(商山金氏)이다. 이증현(李曾賢)[1629~1694]은 1657년(효종 8) 사간원대사간 민응형이 선조 대 삼대신(三大臣)의 후예를 채용하길 청하여 사옹원(司饔院)의 참봉으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이후 군자감과 내섬시의 주부를 거치며 외직으로 교하현감과 영천군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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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제2대 왕인 정종[재위 1398~1400]의 손자로 아버지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이며, 어머니는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 이종무(李從茂)의 딸이다. 형제로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부윤부수(富潤副守) 이효숙(李孝叔), 송림부수(松林副守) 이효창(李孝昌) 등이 있다. 이효성(李孝誠)[?~1518]은 형제인 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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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밤일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왕족 이효성의 묘소. 조선 전기의 왕족이며 공신인 이효성(李孝誠)[1445~1517]은 본관이 전주(全州), 시호는 공소(恭昭), 양명(襄明)이다. 할아버지는 정종이고 아버지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이며, 어머니는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 이종무(李從武)의 딸이다. 부인은 전씨이다. 형제인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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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남항거사(南港居士)이다. 세종의 다섯 번째 왕자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7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한(李漢)이고, 할아버지는 이인건(李仁健)이며, 아버지는 군수 이욱(李郁)이다.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로 문정공(文貞公) 황정욱(黃廷彧)의 딸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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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정유재란을 포함]까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16세기 후반 일본의 전국시대의 혼란을 마감시키고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지방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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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통치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427년(장수왕 15) 수도를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천도한 후 적극적인 남진(南進) 정책을 실시하여, 475년(장수왕 63)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전사시키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에 한강 유역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하기 위하여 종래 백제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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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 정선전씨 안동파로 아버지는 호조판서 임하군 전응조(全應祖)이다. 전용(全龍)[1559~?]은 임진왜란 당시 사복시(司僕寺)에 속하여 판관으로서 선조를 호종하며 뒤따랐다. 개성 청서전(淸署展)에 안치된 종묘의 사주(社主)를 봉환할 때 왜군이 포위하여 왼쪽 뺨과 귀가 떨어지는 중상을 입으면서도 임무를 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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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익녕군파 후손이 받은 교지.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의 셋째 부인인 군부인(郡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의 묘소가 광명시 소하동[옛 소하리 마산(馬山) 삼석봉(三石峯) 아래]에 들어서면서 이곳은 군부인 조씨 소생 후손의 선산이 되었다. 이후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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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전주이씨 익녕군파 문중의 묘역. 전주이씨 묘역은 이원익(李元翼)의 종손인 이승규[전 연세대학교 의대교수]가 이원익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묘역에 그의 선조와 후손의 묘소를 이장하여 조성한 묘역이다. 여기에는 이원익의 묘소를 비롯하여 이정은(李貞恩), 이의전(李義傳), 이수약(李守約), 이증현(李曾賢), 이상현(李象賢), 이존도(李存道), 이인복(李仁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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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구(聖九), 호는 주계(周溪). 증조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할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역임한 정동만(鄭東晩)이며, 아버지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다. 아들로 정범조(鄭範朝), 손자로 정인승(鄭寅昇)을 두었다. 정기세(鄭基世)[1814~1884]는 1837년(헌종 3) 정시(庭試)에 병과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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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들로 조선 후기 여섯 차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 있다. 정동만(鄭東晩)[1753~1822]은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한 후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었다. 직장(直長)과 주부(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현령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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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동만의 묘소. 정동만(鄭東晩)[1753~1822]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이다.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정계순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1807년에 의영고봉사(義盈庫奉事)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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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동만의 묘갈. 정동만(鄭東晩)[1753~18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右古), 호는 졸암(拙庵)이다. 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정계순(鄭啓淳)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1807년(순조 7) 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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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서(禹書), 호는 석정(石汀), 규당(葵堂). 증조할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과 승정원도승지를 지낸 정기세(鄭基世)이다. 정범조(鄭範朝)[1833~1897]는 1859년(철종 10)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에 등용된 후 성균관 대사성과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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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이다. 어머니는 용인이씨이다. 외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숭호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김계락의 딸이다.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기세(鄭基世)와 목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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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광명시 향토행정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원용(鄭元容)에게 발급된 교지. 경산(經山) 정원용[1783~1873]은 1824년(순조 24) 아버지 정동만(鄭東晩)의 묘소를 현재의 광명시 학온동으로 이장하면서 이 일대에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그 뒤 정원용 자신은 물론이고, 1970년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으로 이장하기 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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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 역사. 조선 왕조는 1392년 7월 17일[음력]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에게서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되었다. 경기도 광명 지역은 조선시대에 금천 또는 시흥이라 일컬어졌던 지역에 주로 속해 있었다. 금천은 고구려의 잉벌노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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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지급한 돈. 진휼금은 흉년이나 재난을 당한 농민에게 최소한의 생산과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국가가 주는 돈이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 있었던 조선시대에는 흉년과 기근 등으로 국가의 통치 기반이 동요하지 않도록 진휼청을 설치하고 진휼 정책을 실시해왔다. 이러한 진휼 방법은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환곡 제도를 이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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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광명 지역 자치조직의 우두머리. 조선시대에는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는 지방 행정 단위는 현(縣)까지였고, 그 아래로는 지방의 자치 조직으로 면·방·사, 그 밑에 이(里)·촌(村)·동(洞)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면(面), 방(坊), 사(社)의 우두머리가 집강(執綱)이다. 지금의 면장이나 읍장에 해당된다. 이들은 향소의 좌수나 별감의 천거에 의해 수령이 임명하여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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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창녕성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성학조(成鶴祚)와 성하경(成夏慶)이 발급받은 교지. 창녕성씨 교지는 성학조와 관련된 교지 1점과 성하경[1823~1899]과 관련된 교지 34점 등 총 3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학조의 교지는 1822년(순조 22) 성학조를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하는 교지로, 나이 90세가 되어 정식(定式)에 따라 가자(加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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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에 있는 창녕성씨 문중의 묘역. 창녕성씨 묘역에는 성종영(成鍾永)[1827~1890], 성낙유(成樂游)[1865~1925], 성희경(成禧慶)[1884~1961], 성기석(成基錫)[1919~1990] 등 모두 4기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성종영은 돈녕부도정을 지낸 인물이다. 성기석은 성종영의 5세손인데,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 단파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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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철은 인류가 도시나 국가를 형성한 문명 단계에 들어서면서 개발되기 시작하여 청동기를 잇는 새로운 금속으로 등장하였다. 청동에 비해 철의 원료는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서 야철(冶鐵) 기술만 습득하면 어디서나 생산이 가능하였다. 이후 강(鋼) 제조 기술이 발명됨으로써 예리한 이기(利器)의 제작이 가능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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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2동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철망산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하안2동 산19-10~12, 21~24-15번지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광명시 하안2동 시립도서관 남서쪽에 해발 85m의 철망산이 있다. 철망산의 평면 형태는 동서축이 조금 긴 형태로, 정상은 뾰족한 모습이다. 유물들은 대개 철망산 동쪽 능선 상에서 수습되었다. 수습된 유물은 조선시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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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철산동 지석묘는 광명시 철산동 222-1번지[시청로 20]에 있다. 철산동 지석묘는 본래 광명시 철산동 462-33번지에서 확인된 고인돌이나 현재는 광명시민회관 경내로 옮겨져 있다. 철산동 지석묘의 형태는 강화도 삼거리에 있는 3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두 개의 굄돌이 덮개돌을 받히고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과거에는 북방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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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청동(靑銅)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는 청동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이다. 청동기는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하고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원소의 금속을 배합하여 합금(合金)하는 야금술(冶金術)이다. 이러한 야금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석기시대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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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 내에 있는 바위. 바위 위에서 거문고를 빠르게 연주했다 하여 탄금암(彈琴岩)이라 하며, 바위 측면에 ‘탄금암(彈琴岩)’이라고 새겨져 있다. 후손들에 의하면 이 바위는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생전에 거문고 연주를 즐겼던 곳이라고 전한다. 오랜 세월 탄금암이라 전해진 것으로 볼 때 이원익 생전에 글자를 새겼을 것이라 여겨진다. 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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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에 있는 조선 전기 평해구씨 문중의 묘역. 평해구씨 묘역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 뒷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방도 351호선과 지방도 397호선을 잇는 포장 소로와 바로 인접해 있다. 평해구씨 묘역에는 모두 4기의 무덤이 있는데, 구치곤(丘致崑)의 무덤을 중심으로, 우측 아래쪽에는 구차숭(丘次崇)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 1기가 있고, 위쪽으로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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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지. 하안동 건물지가 지닌 변화 과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밤일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의 밭 경작지로, 인위적 훼손이 심하며 현재 진행 중인 마을의 재개발과 연관하여 주변의 지형 또한 변화가 예상된다. 하안1동 안터마을 남쪽에 위치한 물류 창고 단지 뒤편 주말농장과 밤일마을로 가는 소로를 따라 50m 지점의 길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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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하안동 고인돌은 광명시 하안1동 산 168-7번지 일대로, 광명시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산 능선 끝자락의 완만한 지형에 있다. 하안동 고인돌은 남북으로 흘러내린 산 능선에 위치해 있는데, 고인돌의 긴 방향이 바로 산 능선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보면 개석식 고인돌로 판단되며, 고인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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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광명시 하안1동 343~346번지와 하안1동 3517번지 일대에 걸쳐 있다. 하안동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하안1동 안터마을과 도덕산 남서쪽 계곡부 하단부에 걸쳐 있다. 안터마을에서 범일마을로 가는 왼쪽 산 능선 아래 밭에서 수습된 유물은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는 토기류와 자기류 조각들이다. 유물이 산포되어 있는 면적은 1,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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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백제를 멸망시킨 후인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은 667년(문무왕 7) 무렵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 유민의 저항을 진압하고 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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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제2차 시흥농민봉기의 간접적 원인이 된, 한일간 체결한 외교 문서. 한일의정서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배타적 우위를 확보한 일제가 러일전쟁 중인 1904년 2월에 무력으로 조선에 강요한 협약서이다. 이를 ‘대조선대일본양국맹약’이라고도 한다. 한일의정서로 일제는 조선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간섭을 합법화하였으며, 그 결과 광명 지역의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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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557년(진흥왕 18) 신주를 폐지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되었고,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할 때 9주의 하나가 되었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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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광명 지역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이 중심이 되어 운영한 지방 자치 회의기구. 향회(鄕會)는 조선시대 사족의 향촌 지배 기구로서 제1차 시흥농민봉기 때 광명 지역의 농민이 모여 봉기를 일으키게 된 빌미가 된 지역 모임이다. 향회에서 ‘향(鄕)’은 1개의 관읍을 상징한다. 따라서 향회는 군현(郡縣) 단위에서 공론을 수렴하는 회의체이다. 향회는 조선 전기부터 군현 단위에서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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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홍천용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개항기 용재옥(龍載玉) 등이 발급받은 교지. 홍천용씨 교지는 4점의 교지와 진사시 답안지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871년(고종 8) 지구관(知彀官) 용재옥이 무과 병과 제3인으로 급제했다는 교지, 1850년(철종 1) 별무사(別武士) 용무채(龍武彩)가 무과 병과 제65인으로 급제했다는 교지, 1872년(고종 9) 별부료(別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