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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지혜, 두레와 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A010202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학

[설월리를 이끈 공동 노동 두레]

농사가 주업이었던 설월리 마을에서도 여타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두레 공동 노동이 마을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었다. 보통 20~30여 명이 두레 공동 노동에 참여했는데, 작업 시간은 아침 해가 뜰 무렵인 7시에 시작해서 저녁 해가 질 때까지였다. 설월리에서는 두레 공동 노동 조직의 두레원들을 통솔하는 사람을 ‘수건’이라 했다. 수건은 공동 노동의 지휘와 통솔은 물론 작업 계획까지 관장했다. 나이는 보통 55세 정도였다. 수건이 오늘은 누구네 몇 집을 해야 한다고 정하면, 전부 들에 나가 모도 심고 논도 맸다. 수건이 정하면 따라가는 것이다.

두레 공동 노동은 주로 김매기와 모내기에서 행해졌다. 1인당 작업 분량은 모내기의 경우 1마지기 정도였고, 김매기는 세벌매기까지 했다. 작업 순서는 순번제를 기준으로 농사일이 많은 곳부터 차례대로 해 나갔다. 두레 공동 노동은 음력 6월 초순부터 7월 그믐까지 약 2달 동안 행해졌는데, 공동 작업이 마무리되면 유목정보(柳木亭洑)에서 호미걸이를 하고 결산 총회로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는 노인정이었다가 새마을회관이 된 공청(公廳)[공무를 보던 곳]에서 회의하고, 끝나면 막걸리도 마셨다. 동네 비품 그릇을 가져다 동네잔치 하듯 나눠 먹고 잔치가 끝나면 반납했다.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 나가다가 다른 마을 두레를 만나면 두레 간에 시합이나 싸움을 벌이곤 했다. 승부는 풍물을 얼마나 잘하는가와 깃대 싸움으로 갈랐다. 설월리 두레가 보유한 풍물로는 징, 장고, 북, 꽹과리, 소고, 회적 등이 있었다. 두레기는 작업하는 논둑에 꽂았는데, 기를 드는 사람을 '깃대잽이'라 불렀고, 그 밖에 화승불을 관리하는 사람을 '하조사'라 칭했다. 두레기는 가로 45㎝, 세로 200㎝의 크기였는데, 기의 꼭대기에 꿩의 깃털을 달았다. 이 풍물과 풍물기는 도당놀이에서도 사용되었다.

마을 토박이들의 두레패 놀이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하다. 김정관[1932년생] 씨는, 두레패 놀이에서는 노래하는 선소리꾼이 따로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최문락[1939년생] 씨에 따르면, 2009년까지 마을회관 지하에 상여와 두레패가 쓰던 물건들을 보관했는데, 마을청년회 사무실로 내주면서 다 정리하고 없앴다고 한다.

[혼상계와 세찬계]

설월리 사람들이 함께 사는 지혜는 두레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 혼상(婚喪)이 있는 경우 집마다 쌀 2되씩을 모아 부조를 하는 등, 큰돈이 들어가는 경조사도 계를 조직해 함께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표와 장부, 조직, 계주 등 계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어르신들의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세찬계는 다른 마을처럼 정월에 쇠고기를 먹기 위해 운영되던 계였다. 1970낸대 초까지는 존속했다고 하는데, 쇠고기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세찬계는 도당굿을 지낼 때 소 1마리를 공동 구매해 도살해서 굿판에 쓰고 남은 고기들을 주민 1가구당 한 근씩 분배하는 식으로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보제공]

  • •  김정관(남, 1932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 •  최문락(남, 1939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동정자문위원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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