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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29
한자 雙松亭
영어공식명칭 Ssangsong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동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747년 - 쌍송정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21년 - 쌍송정 중수
이전 시기/일시 1975년 - 쌍송정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경상북도 경산군으로 이건
현 소재지 쌍송정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지도보기
원소재지 쌍송정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후포마을
성격 정자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관리자 영남대학교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개설]

쌍송정(雙松亭)은 조선 전기에 금혜가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후포마을에 건립한 정자이다. 안동댐 수몰 지역에 포함됨에 따라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건하였다.

[위치]

쌍송정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 있다. 영남대학교 본관 뒤에 민속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쌍송정은 민속촌 서쪽 산자락에 자리한다.

[변천]

쌍송정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후포마을에 있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5호 ‘쌍송정정침(雙松亭正寢)’의 별당(別堂)이다. 조선 전기 인물인 금혜가 노후에 은거하여 성리학을 강학하던 곳으로,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쌍송정’이라는 명칭은 건물 앞에 용트림하는 소나무 두 그루를 심어 즐겼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1747년(영조 23)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이 작성한 「쌍송정기」에 의하면, 금혜가 은거한 후 금혜의 증손자 죽창(竹牕) 금오(琴梧)가 난세를 피해 쌍송정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후 담 밑에 작은 연못을 파서 연(蓮)을 심고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잣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고 전한다. 또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을 다시 지으며 부엌과 방 3칸, 대청 9칸을 그대로 본떠 짓고, 새로 중문(重門)을 세웠다고 한다. 다시 세월이 흘러 정자가 낡자, 금오의 후손들이 1747년(영조 23)에 중수하였다. 당시 재정이 부족하여 건물의 규모가 축소되었다고 한다. 1975년 이건 때 발견한 상량문에 따르면 1821년(순조 21)에 다시 중수하였다.

원래 쌍송정에는 정자(正字) 홍사제(洪思悌)의 「쌍송정」 제액(題額)과 이광정의 「쌍송정기」가 있었으나 유실되었고, 현재의 기문은 1975년 7월에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옮기면서 재판각(再板刻)한 것이다.

[형태]

쌍송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건물 왼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 6칸의 대청을 두었다. 겨울에는 온돌방을 사용하고 여름에는 대청을 사용하게끔 꾸며진 가옥이다. 자연석으로 된 초석 위에 네모진 기둥을 세웠으며,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전면 3칸은 각각 문짝이 넷으로 되어 열리고 닫히는 사분합문(四分閤門)을, 측면 2칸과 후면 3칸은 각각 문짝의 틀에 널빤지를 끼워서 만든 골판문(骨板門)을 달았다. 온돌방과 대청 사이에 삼분합(三分閤)의 불발기 창을 달았다. 온돌방은 전면, 후면, 측면에 각각 띠살문 쌍창을 달았고, 천장은 우물 반자로 하였다.

[현황]

쌍송정은 원래 남향이었으나 이건 시 지형상의 문제로 북향하게 되었다. 가옥형 정자로 비교적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현재 방화 시설과 주거에 필요한 수도, 전기, 난방 시설이 결여되어 있어 주거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는 쌍송정을 비롯하여 구계서원, 의인정사, 일휴당 등 다양한 조선 시대 건축물이 한 공간에 있다.

[의의와 평가]

쌍송정은 단순한 구성과 소박한 처리를 하고 있으나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매우 견실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 각 부분마다 약간의 장식을 곁들여 은은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인 미와 멋을 찾을 수 있는 건축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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